1962년 핵전쟁 발발까지 갈 뻔했던 쿠바 미사일 사태에서 물러선 뒤 흐루쇼프는 “나는 무서웠다”고 했다. “겁먹었다는 것이 이 ‘미친 짓’이 일어나지 않는 데 기여했다는 것을 뜻한다면 나는 겁먹었다는 것이 기쁘다”는 말도 했다. 무엇이 핵전쟁을 막았나. ‘공포’ ‘두려움’이었다. 우크라이나에서 오래 살아 우크라이나인으로 오해받기도 했던 흐루쇼프는 2년 뒤 권좌에서 축출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정반대다. ‘미친 짓’이라도 서슴지 않을 듯한 태세다.
▷현존 최장 길이(184m)의 러시아 최신 핵잠수함이 핵 어뢰 ‘포세이돈’을 싣고 북극해를 향해 출항했다고 한다. 핵무기 시험 가능성이 있다는 게 나토의 판단이다. 핵무기 운용 부대의 병력과 장비를 실은 러시아 열차가 우크라이나 전방으로 이동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두 개의 뉴스 중에서도 서방이 더 관심을 보인 건 ‘종말의 무기(Apocalypse)’로 불리는 포세이돈이다.
▷포세이돈은 푸틴의 ‘절대 반지’나 마찬가지다.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만큼 미국 최첨단 미사일 방어 체계로 요격이 불가능한 비대칭 전력으로 개발된 것이다. 길이 24m, 직경 2m로 추정된다. 어뢰 모양의 무인 자율주행 잠수정에 핵탄두가 탑재된 방식이다. 최고 속도는 시속 185km, 사정거리는 1만 km에 달한다. 경량 소형의 원자로로 추진기를 작동시켜 ‘은밀하고 조용하게’ 움직인다.
▷푸틴의 노림수는 명확하지 않다. 핵 위협이 허풍이 아닐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과대망상이나 판단력 저하 등 오만증후군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더 이상 개입하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서방에 던진 것일 수도 있다. 완전한 광인(狂人)처럼 보이는 것 자체가 수세에 몰린 푸틴의 치밀하게 계산된 행보라는 시각도 있다. 종전을 위한 협상 전술이란 얘기다.
▷쿠바 위기 직전 케네디는 “세계는 핵의 다모클레스 칼 아래 살고 있다”고 경고했다. 우연한 사고, 계산 착오, 지도자의 미친 짓에 의해 어느 순간에라도 절단될 수 있는 가느다란 실에 핵이 매달려 있는 형국이란 얘기였다. 상황은 다르지만 본질은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자신의 권력을 지켜줄 거라 믿었던 핵무기가 진짜 ‘종말의 날’을 부를 수도 있다.
정용관 논설위원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