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열린 창가에서 편지 읽는 소녀’, 1657∼1659년.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가수 최양숙이 불러 대히트를 쳤던 ‘가을 편지’의 첫 소절이다. 1971년 발표됐지만 이후 수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하며 세대를 뛰어넘는 사랑을 받았다. 이 유명한 한국 가요는 묘하게도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페르메이르는 확실히 편지를 좋아했던 것 같다. 남긴 작품이 35점밖에 안 되지만 편지를 주제로 한 그림을 여러 점 그렸다. 이 그림에도 편지 읽는 금발의 소녀가 등장한다. 사랑하는 연인이 보낸 걸까. 우아하게 단장한 소녀는 한 글자라도 놓칠세라 눈은 편지에 고정됐고, 볼은 빨갛게 상기됐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그녀의 붉은 뺨을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탁자 위를 덮은 고급 양탄자는 구겨졌고, 비스듬히 세워진 접시에선 과일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창문은 보통 바깥 세계로 향하는 통로를 상징한다. 열린 창문은 사회적 제약이나 가정을 벗어나려는 여성의 갈망을 뜻하는 것일 테다. 과일은 육체적 사랑을 의미하나 쏟아지는 과일은 외도로 해석될 수 있다. 어쩌면 편지를 보낸 이는 부적절한 관계의 남자일지도 모른다.
관객들 반응은 어땠을까? 사랑의 신 큐피드가 벽 공간을 장악한 데다 복잡해진 구성에 실망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이전 그림으로 되돌리라는 이들도 있었다. 외로운 여자가 아름답다는 ‘가을 편지’의 노랫말처럼 그림 속 소녀는 더 이상 외로워 보이지도, 정숙해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에 더 크게 실망했는지도 모른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