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5년 만에 일본 열도 상공을 통과하는 탄도미사일 도발을 감행했음에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지지부진한 설전으로만 끝났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는 5일(현지시간) 북한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대응 차원의 안보리 공개회의에서 서로 ‘네 탓 공방’을 하며 결론 없는 논쟁을 이어갔다. 미국은 그간 중국과 러시아의 비협조가 북한 도발을 가속했다는 주장을,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이 원인을 제공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공개발언에서 “이번 주 북한은 위험하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일본 위로 발사했다. 북한은 확실히 대담해졌다”라고 지적했다.
토머스-그린필드 대사는 “북한은 올해에만 39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라고 발언한 뒤 북한의 7차 핵실험 준비 동향 등을 거론했다. 이어 “올해 초부터 13개 이사국이 이런 불법 행동을 규탄하고 북한에 실제 비용을 부과하는 조치에 표를 던졌다”라고 했다.
그는 그러나 “모두가 알듯 북한은 이사회 두 회원국의 보호의 장막(blanket protection)을 향유해 왔다”라며 “이 두 국가는 북한의 반복된 도발을 정당화하고 제재 체제를 갱신하려는 모든 노력을 막으려 애를 써 왔다”라고 했다.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발언이다.
토머스-그린필드 대사는 “안보리의 두 상임이사국이 김정은에게 힘을 실어 왔다”라고 했다. 아울러 북한의 도발이 미국의 적대정책의 결과라는 주장은 ‘근거 없는 믿음’으로 일축, “북한의 적대적인 불법 무기 추구에는 정당한 이유가 없다”라고 했다.
그는 “어떤 국가건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는 우리의 방어적 행동을 이 위협의 원인으로 비난하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또 “우리는 북한에 대응해 한목소리를 냈던 때로 돌아갈 수 있고, 돌아가야 한다”라고 했다.
지난달 실시된 한·미 연합 해상 훈련을 비롯한 연합 훈련에 북한 도발 책임을 돌린 것이다. 이를 감안해 모든 당사국이 냉정을 유지하고 훈련을 자제하며 오산을 부를 수 있는 행동을 피해야 한다는 게 겅 부대표 주장이다.
겅 부대표는 “미국은 최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군사 동맹을 강화하고, 군사 경쟁의 위험을 강화하고 있다”라며 “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미국은 이중잣대를 추구하며, 정치적인 조종에 관여해 역내 안보 환경을 악화한다”라고 했다.
그는 “이런 배경에서 한반도 긴장 고조는 놀랄 일이 아닐 것”이라며 “우리는 미국이 합리적이고 이유 있는 북한의 우려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그 진정성을 입증하며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기를 촉구한다”라고 했다.
안나 이브스티그니바 유엔 주재 러시아 부대사 역시 “미국과 그 역내 동맹국은 지난 8월 대규모 군사 훈련 활동을 재개했다”라며 “9월에는 5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해(동해)에서 미국과 한국, 일본의 훈련이 재개됐다”라고 지적했다.
이브스티그니바 부대사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미국이 이 나라를 둘러싸고 벌인 근시안적인 대립적인 군사 활동의 결과”라며 “이는 미국의 역내 파트너에게 해를 주고 동북아 전체 정세에 악영향을 미친다”라고 했다.
아울러 “한반도 정세는 이 지역에서 현재 벌어지는 복잡한 프로세스와 별도로 고려될 수 없다”라고 비난하고, 미국이 이 지역에서 추진하는 ‘일방적 안보 독트린’이 역내 국가에 위험과 분열을 초래한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영국, 호주 안보 협의체인 오커스(AUKUS)를 거론, “새로운 블록을 형성하는 행위”의 실례로 거론하기도 했다. 미국이 ‘내 편이 아니면 적’의 이분법을 초래하고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이에 먼저 발언을 마쳤던 토머스-그린필드 대사는재차 발언권을 얻고 “예상대로, 러시아와 중국은 북한을 비난하는 대신 다른 곳을 비난하기를 원한다”라고 지적했다. 첫 발언에서는 중국과 러시아를 직접 거명하지 않았지만, 두 번째 발언에서는 정확히 지칭했다.
토머스-그린필드 대사는 또 “미국과 한국은 책임 있는 방법으로 국제법과 일치하게 방어적인 군사훈련을 한다”라며 “이런 훈련은 대비 태세와 중요 억지력을 향상하고 역내 위협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토머스-그린필드 대사는 “(반면)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불법적이고 무모하며, 이웃 국가를 위험에 빠뜨린다”라며 “이들 두 활동(한·미 훈련과 북한 미사일) 사이에는 동등성이 없다”라고 했다.
아울러 “오커스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위반하지 않는다”라고도 말했다. 그는 “우리는 NPT 의무를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영국과 호주도 그러리라는 점을 안다”라며 러시아와 중국이 북한 문제에서 주의를 돌리려 한다고 지적했다.
이후 러시아와 중국의 추가 발언을 통한 반박이 이어졌고, 안보리 회의는 비공개로 전환됐다. 이날 회의는 당초 전체 공개로 추진됐지만 개회 직전 일부 공개 후 비공개 전환으로 형식이 바꾸었다. 중국과 러시아의 공개회의 반대 기조가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비공개 회의를 거쳐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한 각국은 북한을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최근 북한의 도발로 소집한 안보리 회의는 늘 미·중·러 간 설전과 일방적인 공동성명으로 끝났는데, 이 선례를 오늘도 따른 것이다.
한편 이날 회의에는 안보리 이사국은 아니지만 이해당사국 자격으로 한국과 일본 대표도 참석했다.
황준국 주유엔 대사는 이날 “북한은 안보리의 침묵에 더 잦은 탄도미사일 발사와 새로운 핵무기 사용 법률로 요란하게 대응한다”라며 “안보리는 북한에 긴장을 고조하는 행동은 끝이 나게 돼 있다는 단합되고 명확한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시카네 기미히로 유엔 주재 일본 대사는 “우리 모두가 머리 위로 날아가는 미사일을 보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는 완전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어 “현재의 상황이 ‘뉴 노멀’이 되도록 둬서는 안 된다”라고 조치를 촉구했다.
[워싱턴=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