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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의 정당한 보상을 가로채는 사회가 ‘범죄도시’ 아닐까요[이진구 기자의 대화]

입력 | 2022-10-08 12:00:00

[대화, 그 후-‘못다 한 이야기’]
영화 범죄도시 강윤성 감독 편 1




최근 범죄도시의 강윤성, 오징어게임의 황동혁, 한산의 김한민 감독 등 국내 영화감독 200여명이 국회에 모였습니다. 우리 영화가 전 세계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데, 정작 감독, 작가 등 창작자들에게는 단 한 푼의 보상도 없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였지요. 그래서 왜 이런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졌는지 묻기 위해 강 감독을 인터뷰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유는… 외국에서 주기 싫어서 안 주는 게 아니라, 국내법에 받을 근거가 없기 때문에 못 받는 것이었습니다.

설명에 앞서 지금 감독 등 창작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 보상’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낯선 개념이라 영화계 안에서도 저작권료와 혼재해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도 지난 기사에서는 독자의 이해를 위해 한국영화감독조합의 양해를 얻어 ‘저작권료’라고 표현했지요.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정당한 보상’은 저작권자에게 지급하는 저작권료나, 연출료, 인센티브와는 조금 다른 개념입니다. 작품의 이용 횟수에 비례해 창작자에게 일정 보상을 지급하자는 것이죠. 

우리나라 저작권법은 특약을 맺지 않는 한 법적으로 제작사가 저작권을 갖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저작권료는 저작권을 가진 제작사나, 제작사로부터 저작권을 산 투자사가 가져가지요. 계약금은 말 그대로 계약금일 뿐입니다. 계약금을 받은 후 작품이 이후 어떤 수익을 내도 창작자에게 돌아오는 것이 없는 것은 이런 구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영화 같은 영상저작물은 만들어진 후 수십 년이 지나도 재상영 등을 통해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명절 때마다 방송에서 단골로 트는 영화들이 그런 경우죠. 방송사는 이 영화의 방영권을 저작권을 가진 제작사나 투자사로부터 사 옵니다. 방송사는 영화를 틀고 광고 등으로 이익을 얻고요. 제작사 또는 투자사, 방송사 모두 이 영화로 인한 이익을 얻는 것이죠. 그런데, 앞서 말한 이런 구조 때문에 정작 이 영화를 만든 감독과 작가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보통 감독들이 시나리오 하나를 완성하는데 보통 2~3년, 더 긴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오징어게임의 황동혁 감독이 스트레스로 이빨 6개가 빠졌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죠. 강 감독도 범죄도시 투자자를 못 구해 3년이나 촬영을 못 했다고 합니다. 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영화 ‘타이타닉’에 출연했던 5살 꼬마는 단 한 줄의 대사밖에 없었는데 타이타닉이 재상영을 거듭하면서 지금까지 25년째 분기별로 200~300달러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만약 타이타닉이 우리 영화였다면, 25년째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해 작품을 만든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없고, 구매담당자가 사 온 영화를 틀기만 한 방송사는 25년째 돈을 번 셈이죠. 이거 좀 너무한 거 아닌가요?

이런 주장을 하면, 감독들만 잘 먹고 잘살려고, 자신들 배만 불리려고 하려는 것 아니냐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강 감독이 인터뷰 중에 제게 물은 게 있습니다. 감독들이 제작사와 제대로 계약을 맺고 찍는 영화(상업영화 기준)가 평생 몇 편이나 될 것 같으냐고요. 

저도 답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한국영화감독조합 실태조사에 따르면 5편이 되지 않았습니다. 30, 40대 감독들은 평균 3편이 안 되고요. 물론 유명 감독들은 다릅니다만 그들도 작품이 터지기 전까지는 마찬가지입니다. 강 감독도 30살 때 상업영화를 찍을 기회가 있었는데 무산된 후 데뷔에 17년이나 걸렸다고 했습니다. 그 영화가 범죄도시죠. 

그런데 상업영화 기준으로 신인급 감독의 계약금은 5000만원 정도라고 합니다. 2~3년에 걸쳐 시나리오를 완성해야 제작사와 계약을 맺을 테니 연봉으로 치면 2000만원이 안 되는 셈이죠. 그나마 한 번에 주지 않고 제작사와 계약할 때 절반, 투자사를 찾으면 나머지 절반을 주는 게 관행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투자사를 못 찾아 영화가 엎어지는 게 비일비재하지요. 범죄도시조차 3년 동안 투자사를 못 찾았으니까요. 감독들이 말하는 ‘정당한 보상’은 배를 불리자는 게 아닙니다. 그들에게 이런 표현은 실례입니다만… 저는 ‘생존권’ 또는 ‘최저생계비’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우리가 범죄도시나 오징어게임, 기생충 같은 작품에 뿌듯해한다면, 그런 작품이 나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죠. 영화 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 분야가 다 마찬가지지만 노력과 성과의 결과에 대한 정당한 보상은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기본 원리입니다. 

범죄가 나쁜 것은 정당한 노력 없이 남의 것을 가로채거나, 적은 노력으로 큰 이득을 보려 하기 때문이지요. 이빨이 빠질 정도로 고생해 만든 결과물을 만든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없고, 수십 년 동안 돈과 유통망을 가진 사람들만 이득을 본다면… 그게 범죄도시 아닌가요?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