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립미술관 수장고에 재설치
원작대로 복원된 백남준의 프랙탈 거북선 앞에서 복원 작업을 벌인 이정성 아트마스타 대표와 복원 계획을 추진한 선승혜 대전시립미술관장(왼쪽부터)이 기념촬영을 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1993년 8월 대전 세계박람회(엑스포)의 재생조형관에 기이한 작품 하나가 들어섰다. 300여 대의 고물 TV 모니터와 못 쓰는 라디오, 토스터기를 무질서하게 쌓아올린 듯한 작품이었다. 빈 병 5만 개로 만든 재생조형관에 어울릴 법한 이 작품은 비디오아트 거장 백남준의 ‘프랙탈 거북선’이다.
이 작품은 미래 과학 기술에 대한 작가의 선구적 시선과 지구 환경에 대한 철학 등이 총망라된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백남준은 “거북은 이순신의 하이테크 무기, 세계 최초의 장갑선, 생태학적인 특수 표본, 동양 특히 은(殷), 동이(東夷)적인 신탁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자신의 작품을 설명했다.
하지만 3개월의 엑스포가 끝난 뒤 이 세기의 작품은 잊혀졌다. 재생조형관에 물이 흘러들어 작품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TV는 고장 나고, TV의 나무케이스는 썩어 들어갔다.
하지만 협소한 공간이 문제였다. TV 4대씩 총 10줄인 날개 가운데 일부(좌우 각각 1줄씩)를 잘라내야만 했다. 높이도 조금씩 줄였고, 원래 309대이던 모니터는 301대로 줄었다. 특히 2층 로비에 들어오는 자연광은 어둠 속을 화려하게 나는 듯한 거북선의 본래 이미지 구현을 어렵게 만들었다.
결국 거북선은 시립미술관이 4일 전국 공립미술관 가운데 처음으로 ‘열린 수장고’를 지하 1층에 마련하면서 다시 태어났다. 이날 거북선 일반 공개 현장에서 만난 이 대표는 “잘려 나갔던 양쪽 날개를 부활시켰고 공간이 좁아서 제거했던 빔 프로젝션도 다시 설치했다. 무엇보다 자연광이 제거돼 당초 원작의 완벽한 모습을 되찾았다”며 “2002년 복원할 때 상태가 너무 안 좋아 포기할까 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고쳐 두길 잘했다”며 감회에 젖었다.
이어 “동물 보호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작품 한쪽의 아크릴 어항에 거북을 넣었으면 좋겠다”며 “백남준 선생님도 어항에 거북을 넣어 기르기를 원했다”고 전했다.
선승혜 대전시립미술관장은 “열린 수장고 개장으로 백남준 탄생 90주년을 맞아 거북선을 시민들에게 온전하게 돌려줄 수 있게 됐다”며 “과학기술과 예술을 융·복합한 백남준의 예술 작품이 한국 예술의 국제 경쟁력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