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우 정치부 차장
최근 만난 고위 당국자의 한숨이 기억에 남는다. 인기 없는 지도자는 글로벌 무대에서 저평가 받게 마련, 충분한 존중을 받지 못한다. 결국 민감한 수싸움이 고차방정식으로 쉴 새 없이 전개되는 외교 전장에서 국내에서 고전하는 리더는 밖에서도 힘들다. 그래서 리더의 지지율이 국익과 직결될 수 있다는 게 그의 논리였다.
우리 대통령은 어떨까.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효과’를 외교 전장에서 누리고 있을까. 취임 11일 만에 초고속 한미 정상회담이 열릴 당시만 해도 한 당국자는 이렇게 귀띔했다. 문재인 정부가 무너뜨린 외교의 틀을 세우는 작업이 ‘우리’ 대통령 지지율을 든든하게 받쳐줄 거라고. 그는 자신만만했고,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을 상대하는 윤 대통령의 표정은 더 자신감이 넘쳤다. 넉 달 만인 지난달 다시 만난 이 당국자가 대통령을 바라보는 눈빛은 달라져 있었다. 대통령의 아쉬운 행보를 쭉 열거하던 그의 답답함은 30%대 지지율로 종결됐다. “물가, 금리, (원-달러) 환율까지 미친 듯 오르는데 지지율만 안 오른다. 미치겠다.”
문제는 도무지 반등 기미를 보이지 않는 대통령의 지지율 여파가 외교 전장에도 스며들고 있다는 데 있다. 다자든 양자든 정상회담에 앞서 상대국들은 꼼꼼하게 우리 대통령의 국내 정치적 상황, 입지 등까지 체크한다. 대통령 개인의 위상은 회담 결과를 흔들 수 있는, 무시 못 할 변수란 게 외교가에선 정설이다. 지지율 30% 덫에 빠진 윤 대통령 입지를 사전 체크하고 등장한 외국 정상들은 상대적으로 힘을 빼고 마주 앉을지 모른다.
심지어 윤석열 정부는 외부 상황까지 뼈아프다. 30%대 지지율에 초조한 바이든 대통령은 지지율 반등을 위한 회심의 카드로 ‘메이드 인 아메리카’를 꺼내들었다. 덕분에 북미산 전기차에 한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발효됐고, 그 직격탄을 한국이 맞았다. 일본은 출범 1년을 맞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바닥 지지율을 찍으면서 강성 우익 지지층의 눈치를 더욱 살피는 분위기다. 그렇다 보니 강제징용 문제 등 민감한 현안을 다룰 때 우리 얘기에 귀 기울일 여유가 없어 보인다.
대선 승리의 컨벤션 효과를 채 누리기도 전에 지지율 고심에 빠진 윤 대통령 입장에선 욕심이 날지 모른다. 외교 무대에서라도 과실을 따고 싶다고, 하지만 욕심은 눈을 가리고, 성급함은 참사를 부른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기본은 ‘외교 초보’ 윤 대통령이 지금 가장 새겨야 할 말일지 모른다.
신진우 정치부 차장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