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20년 전 연구실 졸업생들을 얼마 전에 만났다. 일본에서 사는 제자가 서울을 방문한 터라 환영회 겸 겸사겸사 모이게 되었다. 그 제자는 내 첫 박사학위 제자로, 일본으로 건너가 박사 후 과정을 밟은 후 지금까지 쭉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다.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일본의 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하고 있어 마음이 뿌듯했다. 제자가 스승에게 선사하는 가장 가슴 따듯한 기쁨은 이런 것 아닐까. 또 한 명의 제자는 현재 대기업에 몸담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대학교수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들 역시 눈부신 길을 걷는 중이었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보잘것없던 옛날 연구실 이야기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졌다. “교수님이 제게 한번 해보자 이 말을 하실 때, 저는 다 알고 하신 줄 알았는데, 아니었더라고요.” 제자가 이 말을 농담으로 할 때는 정말 뜨끔했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교수가 된 나 역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시작한 초보 운전자였다. 단지 될 것 같은 확신이 더 있었을 뿐이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은 누구에게나 새로운 길이다. 당시 내가 더 가지고 있었던 것은 이미 경험한 지식과 포기하지 않는 끈기 아니었을까. 하나 더 있었다고 한다면 제자에 대한 신뢰. 그때 함께했던 일들이 결과를 얻어 논문으로 발표했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때의 물불 가리지 않는 무모한 호기심과 하나를 설명하면 열 개를 이해하는 제자들의 똘망똘망한 눈빛이 그립다.
다른 이야기이지만, 올해 초 스승의 날에 최근에 졸업한 학생들을 만났다. 결혼을 했거나 결혼을 앞둔 제자들뿐 아니라, 결혼을 아예 생각도 하지 않는 제자들도 있었다. 모임이 시작되자 자연스럽게 집에 대한 문제가 나왔다. 그들에게 집을 장만한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였다. 그 다음 직장을 다니며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방법 등등 끝없이 어려운, 현재를 사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하며 가정을 꾸리는 어려운 시기의 나이라고 하지만 많이 힘들어 보였다.
20년 전 연구실 졸업생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젊은 제자들이 생각났다. 걱정 없이 아이를 낳고 키우고 조금씩 절약해서 집을 장만하고 열정적으로 일을 하고 또 멋있게 휴일을 즐기고…. 사는 게 물리학보다 쉬운 일인 줄 알았는데. 그 반대가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이 역전되는 길이 있을까. 안타까움과 복잡한 마음이 뒤섞인 채, 지하철과 함께 덜컹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