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 사용에 최적화된 서체 궁서체 가로쓰기로 바뀌며 탈네모꼴 도입 시대상-필기도구 따라 글꼴 변해
서울시가 개발한 한강남산체로 적혀 있는 서울시의 표지판. 최근 기관과 기업에서 글꼴을 브랜드 마케팅에 이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서울시 제공
한글이 최근 디지털 기술 등과 만나 개성이 살아난 글꼴로 재탄생하고 있다. 기관이나 기업의 정체성은 물론이고 상업시설 간판에도 활용되면서 재조명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글 글꼴의 변화에는 시대상과 기술이 담겨 있다고 본다. 대표적인 게 한글 서체인 ‘궁서체’다. 서양에서는 깃펜이나 동물의 깃털처럼 뾰족하고 납작한 도구를 사용했다면 동양에서는 붓을 이용해 다양한 굵기와 곡선을 표현했다. 조선 중기 궁녀들이 쓰던 글꼴이었던 궁서체는 한글을 유연하고 빠르게 쓰는 데 제격이었다. 박윤정 국민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는 “붓의 부드러운 질감과 먹의 농담이 더해져 도톰하면서도 폭신한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 동양 서체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한글은 다른 한자 문화권과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 세로쓰기를 해오다 광복 이후 사회 전반에 걸쳐 가로쓰기가 도입됐다. 기본적으로 세로쓰기용 글꼴은 글자 하나를 정사각형 안에 넣는 네모꼴 글꼴이었다. 받침이 있는 글자와 없는 글자의 크기가 달라 자음과 모음 28자 조합으로 1만1172자를 각각 따로 만들어야 했다.
한글의 가장 큰 매력은 효율성이다. 영어는 알파벳을 일렬로 풀어쓰는 형태인 반면 한글은 자음과 모음을 이용해 낱자를 만들어 모아쓰는 구조다. 글꼴을 디자인할 때 초성에 어떤 자음이 오느냐에 따라 공간 전체를 배분하는 게 달라질 만큼 매력적인 문자라는 분석이다.
기술적 문제를 ‘폰트’로 극복하는 경우도 있다. 외화 자막으로 활용되는 ‘태-영화체’는 끝이 동글동글한데 여기에도 역사적 배경이 있다. 예전에는 필경사가 영화 자막을 직접 썼는데 필름에 자막을 입히는 과정에 화학약품으로 동판을 부식시키는 단계가 필요했다. 이때 글자가 함께 부식되면서 끝이 뾰족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필경사들은 부식될 부분을 감안해 획 끝을 둥글게 만들었다.
서울한강체, 서울남산체 등 서울시가 도시 브랜딩을 위해 만든 서체처럼 개성을 살린 글꼴은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네이버가 만들어 배포한 ‘나눔서체’도 유사한 사례다. 박 교수는 “기관이나 기업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글꼴을 활용하고 있다”며 “네이버, 현대카드 등 글꼴 마케팅에 성공한 사례가 늘며 이런 추세는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애 동아사이언스 기자 ya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