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분야 8건으로 가장 많아 ‘국가핵심기술’ 법적 기준 모호해 中에 기밀 넘기고 무죄선고 받기도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제조사의 개발부장 A 씨는 ‘실시간 습식 식각(화학약품으로 표면을 가공하는 작업) 장비 제어기술’을 2016년 중국 기업에 유출했다. 이 회사에서 함께 일한 중국인 B 씨가 중국 업체로 이직하며 A 씨에게 기술을 넘겨줄 것을 제안한 것. A 씨는 업무용 노트북에 저장된 해당 기술 관련 소스코드 584개를 휴대용저장장치(USB메모리)에 몰래 담아 B 씨에게 전달했다. 이 기술은 중국 현지의 여러 OLED 업체에 전해진 것으로 파악됐다.
실시간 습식 식각 장비 제어기술은 디스플레이 두께가 설정된 목표에 이르면 자동으로 식각을 종료하는 국가핵심기술이다. A 씨는 지난해 1월 1심 재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지만, 올 1월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중국으로 유출된 기술이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1, 2심 재판부의 판단이 엇갈린 데 따른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개별 유출 기술들이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법적 기준이 모호하다”고 말했다.
국가핵심기술 등의 해외 유출이 늘면서 정부 대응도 강화되고 있다. 산업부는 이달 중 기업들을 대상으로 산업기술 보호관리 실태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자율주행 기술 빼돌려도 집유… ‘기술유출 판결’ 실형 10%뿐
1심 징역 선고→2심선 집행유예
“낮은 처벌에 계속 유출” 지적 나와
정부, 처벌 강화 등 법개정 나서
핵심기술 유출 양형기준 신설 추진
지난해 사법연감 통계에 따르면 일반 형사사건의 실형 비율이 27.7%인 것과 비교하면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혐의자에 대한 법원 판결이 상대적으로 관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한국의 핵심 기술들이 해외로 새게 되는 핵심 이유이기도 하다. 윤해성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산업기술 유출은 국가 안보 위협에 해당하는 사안으로 봐 좀 더 엄격하게 법 집행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가핵심기술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도 문제다. 예를 들어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의 패널 설계, 공정, 제조 기술은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돼 있다. 하지만 AMOLED 관련 기술 가짓수가 너무 많고, 새로운 기술이 지속적으로 나오다 보니 재판에서 국가핵심기술로 볼 수 있는지 애매해지는 경우가 많다. 국가핵심기술 유출은 산업기술 유출보다 더 강한 제재를 받는다.
양형 기준도 없다. 현행 산업기술보호법에는 국가핵심기술 해외 유출 행위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 15억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규정돼 있을 뿐 대법원 양형 기준은 별도로 없다. 이 때문에 판사들은 영업비밀보호법을 준용해 1년∼3년 6개월 징역형을 양형 기준으로 삼고 있다.
산업부는 산업기술 유출 사각지대를 막기 위해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국가핵심기술 보유 업체들에 대한 등록제와 외국인의 국가핵심기술 보유 국내 기업에 대한 투자 제한 강화, 위반 시 처벌 강화 등이 골자다. 산업부는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 수를 170여 개로 추산하고 있다. 등록제에 참여한 기업에 수출 간소화 등의 인센티브를 주고, 참여하지 않는 기업에는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세종=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