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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항암제’ 숲에서 새 삶… “이젠 치매예방 산림치유 코스 개발[서영아의 100세 카페]

입력 | 2022-10-08 03:00:00

[이런 인생 2막]76세 산림치유지도사 박삼령 씨
정년퇴직후 갑자기 찾아온 림프종… 임상시험 항암제 투여로 완치 행운
치료과정서 효과본 숲 치유에 관심… 전문 자격증 따려 농학과 편입학도
치유지도 활동기회 더 많아졌으면



집에서 가까운 인릉산을 찾은 박삼령 씨가 관목을 살펴보고 있다. 숲에 가면 몸이 가벼워지고 머리도 맑아진다는 박 씨는 숲에서 가까운 곳에서 살기 위해 이곳으로 이사까지 왔다. 이훈구 기자 ufo@domga.com


한국의 중년 남성들이 ‘나는 자연인이다’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산림치유지도사 박삼령 씨(76)는 나이가 들수록 ‘녹색갈증(바이오필리아)’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녹색갈증은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 하버드대 교수의 이론으로, 인간 DNA에 자연과 다른 생명체에게 이끌리는 본능이 있어 그들과 연결되고자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아예 숲에서 일한다. 숲은 그의 일터이자 생명을 다잡는 공간, 스스로 치유되고 남들의 치유를 돕는 공간이다.

“솔바람 부는 숲에서 호흡만 깊게 해도 온몸의 세포가 살아나고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도심에서 묻은 심신의 때를 씻어내 주지요.”

숲 근처에서 살고 싶어 8년 전 아예 청계산 자락으로 이사했다는 박삼령 김지수 씨(74) 부부를 4일 만났다.
○극복과 치유의 힘을 숲에서 찾다
대학을 졸업한 1973년 외환은행에 입행해 정년퇴직(2004년)까지 한 우물을 팠다. 이듬해부터는 개방직 공무원인 전라남도투자유치단장을 맡았고 호남대 무역학과 겸임교수로도 일했다. 대부분 퇴직해 일을 손에서 놓은 친구들이 “넌 이모작을 하는구나”라며 부러워했다. 이런 일들도 슬슬 끝이 보이던 65세 무렵, 몸에 이상신호가 왔다.

“여보, 당신 얼굴이 좀 이상해.”

부인 김 씨에 따르면 안색에 초록빛이 돌았고 오른쪽 눈두덩이 부어 보였다. 대학병원에서 눈 뒤쪽 림프샘에 숨어 있던 작은 혹을 발견했다. 안와 림프종. 조직검사 결과 악성이었다. 의사는 수술은커녕 방사선 치료조차 어렵다고 했다.

“그래도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마침 새 표적항암제가 나와 임상시험 중이었는데 자리가 남아 있었어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응했는데 효과가 좋았습니다.”

그렇게 항암주사를 6번 맞고 5년 넘는 관찰기간을 거쳐 2019년 완치 판정을 받았다.

“항암주사를 맞은 뒤 2주간은 좋은 세포도 따라 죽는 기간이라 무척 힘듭니다. 그 뒤 다음 주사 맞기까지 2주는 조금 살 만하죠. 이런 때 산속 요양병원과 치유센터 등을 찾아다녔습니다. 좋은 공기와 명상, 산림치유가 효과가 있고, 스트레스가 가장 해롭다는 확신이 들었지요.” 하던 일을 싹 정리하고 숲 해설가 공부를 시작해 2014년 국가자격증을 취득했고, 다시 산림치유지도사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숲 해설가와 산림치유지도사는 어떻게 다른가요.

“숲 해설가는 현장에서 숲의 생태를 설명하는 일인데, 누구나 응시할 수 있어요. 약 2만5000명 배출돼 있습니다. 산림치유지도사는 치유의 숲, 자연휴양림, 삼림욕장 등을 활용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개발해 현장에서 지도하는 일을 하는데, 자격 요건부터 까다롭습니다. 대학 관련 학과(산림 의료 보건 간호 등) 학위가 있어야 하고 양성기관에서 1년 정도 공부해야 시험 자격이 주어지죠. 현재 2500명쯤 있습니다.”

지도사들은 현장에서 사용할 2시간 길이의 프로그램을 직접 짜고 방문객을 대상으로 강사 노릇도 한다. 예를 들면 깊은 호흡으로 몸속 독소를 내보내고 피톤치드 음이온 산소 등이 들어오도록 유도해 뇌를 맑게 해준다. 황톳길 맨발 걷기를 한 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지압을 한다. 적당한 장소가 있으면 명상을 지도하기도 한다. 대상층이 고령자라면 치매 예방에 비중을 주고 청년이라면 운동을 많이 시키는 식으로 프로그램을 조절한다.

그도 방송통신대 농식물학과에 편입해 농학사를 따고 평생교육원에서 1년 양성과정을 마쳤다. 2019년 자격증을 딴 뒤 2020년 강릉 국립자연휴양림에서 4개월, 2021년 완도 약산 해양 치유의 숲에서 4개월간 일했다. 월 200만 원 정도의 급여가 나왔지만 지방살이 비용을 해결해야 하니 남는 건 없다. 완도 치유의 숲에서 일할 때는 근처에 숙박시설이 마땅치 않아 2시간 거리인 나주의 레지던스 호텔에서 출퇴근했다.
○ 73세, 산림치유지도사가 되다

숲 해설가가 된 박삼령 씨는 남산 숲이나 양재 시민의 숲, 청계산 등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자원봉사에도 열심이다. 사진은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숲의 생태에 대해 설명하는 박씨. 박삼령 씨 제공

산림치유지도사로서 활동할 기회는 갈수록 줄고 있다. 지원자가 늘어 경쟁이 격화됐기 때문. “‘제2의 인생’을 논하며 중노년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만든 제도인데, 지원자가 미어터지는 상황입니다. 주관하는 산림청이 고민이 많을 겁니다.”

규모가 큰 휴양림이나 치유의 숲은 매년 연초에 공개입찰을 통해 팀 단위의 산림치유지도사 조합과 업무계약을 한다. 1급 산림치유지도사가 조합장이 돼 5명, 10명씩 조합을 만들게 된다. 그는 올해 여러 군데에 지원했지만 모두 떨어졌다. 개인별로 뽑는 곳들도 높은 경쟁률에 일을 잡기가 쉽지 않다. 그때마다 나이 때문인 것 같아 영 속이 상한다. “물론 나이 때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은 없지만, 다른 이유가 별로 없거든요. 저 때문에 저희 팀이 떨어진 것 같아 다른 조합원들에게도 미안하죠.”

―이런 일은 경륜이 오히려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다만 나이든 사람이 끼면 조합의 다른 분들과 호흡이 맞지 않을 수 있으니 애초에 피하고 싶겠지요. 제가 지난해부터 산림치유지도사협회 이사를 맡고 있는데, 그것도 경계의 요인이 되는 듯합니다. 요즘은 40, 50대 여성이나 20대 지도사도 많으세요. 제가 조합장이라 해도 말 잘 듣는 젊은이를 뽑지 할아버지 꼰대를 왜 뽑겠어요. 하하하.”

그래도 포기하지는 않는다. 지난주에도 산정호수에 답사를 다녀왔다.

“하루 빈자리를 메우는 거지만 최근 모집공고가 났어요. 16일 주민 30명이 방문한다고 합니다. 산림치유를 지도하려면 현장을 속속들이 보고 프로그램을 짜야 합니다. 얼마나 걸으면 계곡이 나오는지, 명상할 만한 공간은 어디에 있는지 미리 파악해 둬야 하죠.”

“제게 산림치유지도사는 봉사 활동입니다. 내가 아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나눈다는 생각으로 임합니다. 앞으로도 봉사하면서 여생을 살고 싶습니다. 제가 치매예방운동지도사 자격증도 갖고 있어요.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면 치매 예방 산림치유 코스를 중점적으로 개발하고 싶습니다. 전남지역에서 주간보호센터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교육해 본 적이 있는데 호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지금 이대로 충분히 행복”
그는 독일에서만 세 번 주재원 생활을 했고 호주 현지법인 사장을 끝으로 퇴직했다. 외환위기가 터진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외환은행 독일 현지법인 사장으로 있었다. 부인 김지수 씨는 알고 보니 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에 당선된 작가였다. 잦은 해외살이로 활동이 끊기다 보니 어느 새 밀려난 세대가 돼 버렸다고 한다. 부인에게 미안하지 않으냐고 묻자 그는 “대신 다른 많은 경험이 창작의 소재가 된 것 아닌가…” 하며 웃는다. 2010년 낸 김 씨의 소설집 ‘누가 강으로 떠났는가’(문학나무)의 표지는 호주 시절 그가 찍은 사진을 사용했다.

김 씨는 ‘남편이 숲 해설 한다’고 하면 비슷한 연배 여성들이 엄청 부러워한다고 말한다. 퇴직 뒤 한동안 활동적이던 남편들도 나이가 들면서 집에서 TV만 보거나 자기 방에 틀어박혀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

―부군이 아프셨을 때 힘들지 않았는지요.

“암 진단 받으면 남들은 운다고 하던데, 저는 갑자기 기운이 솟으면서 ‘이 남자, 무슨 일이 있어도 살려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더군요. 제 딴에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덕분에 인생설계를 새로 했어요. 식단도 생활 패턴도 완전히 바꿨지요. 함께 등산하고 숲 여행도 많이 가고, 제 인생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요. 한동안 중단했던 소설 쓰기를 최근 다시 시작해 여러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이런 그는 70대인 지금 인생 최고의 즐거운 나날을 구가하고 있다고 말한다. “노후는 ‘지금 이대로’로 충분합니다. 너무 잘 살고 있어요. 남편은 남편대로 저는 저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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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아 기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