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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박희창]지역화폐 예산 삭감은 비정상의 정상화

입력 | 2022-10-08 03:00:00

박희창 경제부 기자


4일부터 시작된 윤석열 정부의 첫 국회 국정감사에서 여야가 대립각을 세운 곳 중 하나는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였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상임위원회에선 지역화폐에 대한 공방이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은 “지역화폐 예산을 회복시켜 달라는 (상인들의) 말이 절규에 가깝다”며 “지역화폐는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지원 사업”이라고 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실제 현장에선 별 이득이 없다. 지역화폐로 결제하면 그 자리에서 일부를 현금으로 돌려받는 ‘현금깡’에 불과하다”고 했다.

여야의 충돌은 내년 지역화폐 예산 전액 삭감에서 비롯됐다. 정부가 올해 8월 말 내놓은 내년 예산안에는 지역화폐 예산이 한 푼도 담겨 있지 않다. 올해 지역화폐 예산은 8050억 원이었다. 지역화폐는 해당 지역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으로, 일정 비율로 할인된 가격에 구매해 쓸 수 있다. 예컨대 10만 원짜리 상품권을 9만 원에 사서 쓰는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경기도지사였을 때 역점 사업이었다.

예산이 내년에 0원이 된다고 해서 지역화폐 사업을 중단해야 되는 건 아니다. 그동안 중앙정부에서 해왔던 국비 지원이 사라질 뿐이다. 지역 주민이 10만 원짜리 상품권을 9만 원에 사서 쓸 수 있는 이유는 누군가 1만 원을 부담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1만 원 중 4000원을 중앙정부가, 나머지 6000원은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했다. 내년에는 중앙정부가 챙겨줬던 4000원이 없어지는 것이다. 정부가 “지역화폐 사업을 ‘해라’ ‘하지 마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라며 선을 긋는 이유다.

지자체 앞에는 여러 선택지가 놓여 있다. 하나는 올해보다 할인 혜택을 줄여 계속 사업을 이어가는 방법이다. 내년에도 올해처럼 6000원을 지원하면 지역 주민은 9만4000원을 내고 10만 원짜리 상품권을 사서 쓸 수 있다. 지자체가 정부 몫을 떠안는 것 역시 가능하다. 1만 원을 지자체 돈으로 지원하면 지역 주민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변함이 없다. 물론 지역화폐 사업 규모를 줄이거나 아예 중단할 수도 있다.

지역화폐의 효과는 실제 지역 상인들 간에도 의견이 엇갈린다. 학계에선 상반되는 연구 결과가 여럿이다. 다만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중앙정부가 지역화폐에 지원하는 돈은 전국 모든 국민에게 걷은 세금이다. 그런데 그 혜택은 지역화폐를 구매하는 특정 지역 주민에게만 돌아간다. 올해 8월까지 지역화폐는 전국에서 18조9063억 원어치가 팔렸다. 경기 지역 판매액이 전체의 18%(3조4718억 원)로 가장 많았다.

정부가 지역화폐에 국비를 지원한 것은 2018년부터다. 그 전까지 지역화폐 사업은 지자체 예산으로 운영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된 2020년에 지역화폐 국비 지원을 늘리면서도 올해까지 3년만 지원한다고 했다. 지자체에서 효과가 있다고 판단하면 예전처럼 자체적으로 사업을 이어가면 된다. 내년에 전국 지자체가 수령하는 지방교부세도 올해보다 10조 원 넘게 늘어나 재원은 충분하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두고 소모적인 논쟁을 이어가는 건 정치적 선동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박희창 경제부 기자 rambl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