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 깊은 산골 영월에서는 동강과 서강이 태극모양으로 굽이굽이 흐른다. 깊은 곳에선 천천히 흐르고, 얕은 곳에서는 콸콸콸 소리를 내는 급류가 된다. 강에 둘러싸인 섬같은 육지는 천혜의 감옥이 되고, 때로는 한반도 모양을 닮은 지도가 된다. 영월의 강은 예전엔 궁궐을 짓는 금강송을 한강까지 싣고 가는 뗏목의 출발점이었고, 요즘엔 ‘리버버깅(River Bugging)’으로 불리는 급류타기 레포츠의 명소로 인기다.
●새처럼 한반도 위를 날다
남한강 상류인 영월의 동강과 서강은 영월읍을 중심으로 각각 동쪽과 서쪽으로 흐른다. 영월군 한반도면 옹정리 서강가 선암마을 앞에는 한반도 전체를 옮겨놓은 듯한 모양의 지형이 펼쳐져 있다. 이 마을에서는 뗏목을 타고 한반도 동해안과 남해안, 서해안을 한바퀴 돌 수 있다. 약 1km 구간의 뱃길에선 삿갓을 쓰고 흰 옷을 입은 뗏꾼 복장의 어르신 가이드가 구수한 입담을 뽐낸다.
“여기가 바로 강원도 주문진항입니다. 저 옆에 물 위에 솟은 바위 보이시죠? 울릉도, 독도예요. 이제 물살을 가르고 남해로 갑니다. 저쪽을 보세요. 강변에 자갈이 많죠? 그래서 거기가 바로 부산 자갈치 시장입니다(웃음). 앞쪽 산 위에 전망대가 제주도 성산일출봉이예요. 이제 서해로 갑니다. 종착지인 인천 소래포구에 도착했네요.”
한반도 닮은꼴 지형을 한바퀴 도는 뗏목도 휴전선 넘어 북쪽으로 향할 수는 없었다. 공교롭게도 이 곳부터는 바닥이 얕아지고 급류가 형성돼 있어 안전상 더 이상 나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뗏목에 실린 금강송은 남한강 뱃길 따라 송파나루를 거쳐 마포나루까지 빠르면 20일, 늦으면 한달 걸려 도착합니다. 뗏꾼들은 서울 마포에서 금강송을 팔고, 돈을 받아 강원도까지 걸어서 돌아오곤 했죠. 영월에서 실어날랐던 금강송은 경복궁, 덕수궁, 숭례문, 동대문의 기둥과 대들보가 됐죠.”
배를 타고 한반도를 한바퀴 돌았다면, 이번에는 산 위에서 내려다볼 차례다. 주차장에서 산길을 오른지 약 20분. 가이드가 ‘제주 성산봉’이라고 설명한 전망대에 도착하니 노을빛이 비친 강물 위에 한반도가 떠 있다. 모양만 닮은 게 아니라 ‘동고서저(東高西低)’ 지형까지 닮았다. 동쪽에는 태백산맥처럼 숲이 우거져 있고, 서쪽엔 낮고 평평한 풀밭과 모래사장이 형성돼 있는 것이 영락없는 한반도다.
●동강 급류에서 즐기는 리버버깅
‘동강 리버버깅’은 영월군 김삿갓면 각동수련장에서 출발한다. 2시간에 걸쳐 급류를 타다보면 4km 떨어진 단양까지 흘러간다. 수련장 앞 강변에서 먼저 약 20분간 안전교육이 이뤄졌다. 특히 급류에 기구가 뒤집어졌을 때 다시 올라타는 법을 실습하는 게 필수. 튜브처럼 생긴 기구는 어린이나 여성도 쉽게 올라탈 수 있었다.
드디어 출발! 첫 번째 급류에서 긴장을 한 탓인지 균형잡기가 쉽지 않다. 두 번째 급류는 한층 물살이 세져 롤러코스터를 탄 듯 위아래로 요동을 친다. 마지막 세 번째 급류 코스는 앞이 안 보일 정도로 하얀색 물보라가 온 몸을 때린다. 심장이 쫄깃쫄깃, 짜릿한 기분에 환호성과 비명이 교차한다. 드디어 도착지점. 강물이 잔잔해지자 구명조끼를 입고 동강 물에 풍덩 뛰어든다. 물 위에 누워 하늘을 보며 천천히 흘러간다. 동강의 절경을 눈과 마음에 담는다.
리버 버깅은 체온과 피부부호를 위해 5mm 수트를 입기 때문에 5월부터 10월말까지 동강의 수려한 자연을 감상하며 즐길 수 있다. 카약은 노를 젓지만, 리버버깅은 손과 발을 이용해 추진력을 얻고 방향전환을 한다. 때문에 물갈퀴가 달린 장갑과 핀(오리발), 구명조끼와 헬멧까지 완벽하게 장비를 갖춰 입는 게 필수다.
동강리버버깅을 운영하고 있는 박철희, 박주희 부부는 “뉴질랜드에서 리버버깅을 해보고 매력에 푹 빠져 10여년 전 영월로 귀촌했다”고 말했다. 처음엔 리버버그 2대로 시작했으나 점차 입소문이 나고, 지역 청년들을 리버버깅 가이드로 합류시키면서 영월은 리버버깅의 메카가 됐다. 부부는 영월 청년들과 함께 협동조합을 설립했고,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추진한 ‘2022년 관광두레 스토리텔링 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단종을 위로한 청령포의 소나무
영월 서강에는 단종이 유배됐던 청령포가 있다. 청령포는 서강(西江)이 삼면을 에워싸고 흐르고, 남쪽은 층암절벽이어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섬같은 곳이다 단종은 노를 젓는 나룻배를 타고 들어 갔겠지만 지금은 모터가 달린 보트가 운행돼 불과 1~2분 만에 강을 건넌다. 배에서 내리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발밑의 자갈들이다. 휘청휘청 자갈길을 걸으며 단종의 황망했던 심정을 느껴본다.
숲 속으로 들어가니 하늘로 치솟은 키 큰 소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낸다. 한 그루 소나무가 담장을 넘어 단종이 살던 어소를 향해 구부러져 자라는데, 임금께 예를 표하고 있는 나무라는 뜻으로 ‘충절송’이라고 불린다.
어소 뒤편에는 키 큰 관음송이 있다. 육지의 섬에 갇혀 홀로 지내던 소년 임금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위로해 준 나무다. 관음송은 땅 위 1.2m 지점에서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단종이 그 곳에 앉아 있곤 했다고 한다. 1457년 단종의 비극적인 죽음까지 지켜봤던 이 나무의 나이는 최소 600살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맛집=영월에 유배 온 단종은 백성들이 올린 어수리나물을 맛보고 한양에 두고 온 아내 ‘정순왕후의 분향이 난다’고 하여 즐겨 먹었다고 한다. 3~5월에 채취되는 어수리나물은 특유의 향과 맛, 식감을 맛볼 수 있는 봄나물이다. 영월 읍내에 있는 박가네 식당은 어수리나물밥과 어수리장국, 어수리전 등 다양한 어수리나물 요리를 맛볼 수 있다.
●가볼만한 곳=개관10주년을 맞은 영월미디어기자박물관은 30여년간 일간지 사진기자로 활동한 고명진 전 사진기자협회장이 세운 박물관이다. 1987년 부산 문현로터리에서 태극기를 들고 웃옷을 벗은 시민이 ‘최루탄을 쏘지 마라’고 외치며 뛰어가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박물관 전면에 걸려 있고, 전시장에는 카메라와 사진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영월=전승훈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