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문화부 차장
“방탄소년단(BTS) RM은 유명 미술관만 찾는 게 아냐. 지방의 작은 미술관도 직접 찾아다니면서 학예사들을 감동시키더라.”
얼마 전 중소 규모 미술관에서 학예사로 근무하는 친구가 BTS의 리더 RM을 칭찬했다. 미술 애호가이자 컬렉터로 알려진 RM(본명 김남준)이 미술관뿐만 아니라 한국 근현대 작가 장욱진의 경기 용인 고택을 방문했던 일화를 꺼냈다. “요즘 미술계 중심엔 RM이 있다” “미술계의 떠오르는 파워맨 RM”처럼 오글거리는 수식어도 더해졌다.
RM의 미술 사랑은 유명하다. 그래서 초반엔 그 얘기가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RM이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에 1억 원을 기부해 ‘올해의 예술후원인 대상’을 받은 것, 소장한 권진규 화백의 조각품을 서울시립미술관에 대여한 것, 김환기 김창열 등 여러 작가의 작품을 구입하는 것, 틈날 때마다 전시장을 찾아 작품 옆에서 찍은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 BTS 팬덤 ‘아미’ 사이에선 RM이 간 전시를 따라가는 일명 ‘RM 투어’가 인기인 것까지…. 뉴스로 접한 익숙한 팩트의 나열일 뿐이었다.
RM은 서양 유명 작가들의 작품보단 한국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선호한다. BTS가 해외에 진출하면서 자신의 뿌리는 한국이라는 걸 체감했기 때문이란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광복 전후에 활동을 시작한 작가들을 사랑한다. 어린 나이에 K팝 스타로 성공한 RM이 고가의 미술품을 수집하는 것은 동료 연예인들이 건물을 사들이며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과는 결이 달라 보였다. 투자용이라기보단 자신의 정신적 근육을 키우고 단단한 어른이 되기 위한 매개체로 한국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활용하는 것이 아닐까.
밥상물가를 걱정하는 서민에겐 RM처럼 거장의 비싼 작품을 집에 들여 작품과 대화하며 영혼을 채워 넣는 삶은 그저 ‘먼 나라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꼭 비싼 그림일 필요가 있을까. 서점에 놓인 수많은 서적들, 스크린을 가득 채운 영화,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대사에 꾹꾹 눌러 담은 연극, 몸짓 하나에 아름다움과 메시지를 함축한 무용 공연…. 우리의 영혼을 채워 넣을 예술은 도처에 있다. 올가을, 우리도 RM처럼 예술을 통해 단단한 마음의 근육을 키워 보는 건 어떨까.
김정은 문화부 차장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