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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초심 찾자” 기독교문화유산 탐방 나서

입력 | 2022-10-10 03:00:00

화성 제암교회… 대구 청라언덕…
한교총, 근대교회유산 답사 지원
“종교는 세상 없이 살수 없어요”




6일 전북 전주시 기독교근대역사기념관.

기념관 뒤편 선교사 묘역에는 ‘군산 선교의 개척자’로 불리는 윌리엄 전킨(한국명 전위렴)과 전주예수병원을 세운 마티 잉골드 등 선교사와 그들의 가족 14명의 묘비가 있다. 이곳을 둘러보던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대표회장인 류영모 목사(사진)는 전킨 선교사의 묘비 앞에서 한참 동안 눈시울을 붉혔다.

묘비 옆에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난 전킨의 세 아들을 기리는 키 작은 묘비들도 있다. 1892년 조선에 들어온 전킨은 전주서문교회 담임목사에 이어 군산 영명학교를 세웠다. 그의 부인 메리 레이번은 기전여학교 초대 교장을 지냈다. 기전(紀全)은 ‘전킨 선교사를 기념한다’는 뜻. 류 목사는 “근대 개화기에 활동했던 많은 선교사들이 고국이 아니라 이 땅에 묻히길 소망했다”고 말했다.

7일 개관한 기념관은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로 호남지역 개신교 선교 현황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미국에서 파송된 이른바 ‘7인의 선발대’ 활동 기록과 예수병원을 중심으로 한 의료 분야 유물이 전시돼 있다. 미국 남장로교 출신인 7인의 선발대는 여선교사인 리니 데이니스를 시작으로 전킨과 레이번, 루이스 테이트, 윌리엄 레이놀즈, 테이트의 여동생 매티, 레이놀즈의 부인인 팻시 볼링까지, 1892년 한반도에 온 선교사들을 일컫는다.

당시 개신교의 조선 선교는 자립, 자전(自傳·자진전도), 자치의 3자(三自)를 핵심으로 하는 ‘네비우스 선교정책’으로 이뤄졌다. 미국과 캐나다. 호주 교단들은 중국에서 오랫동안 선교한 존 네비우스의 제안을 받아들여 지역별로 나눠 활동했다. 허은철 총신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3자와 함께 눈여겨볼 것이 목사와 교사, 의사가 협력해 선교활동을 하는 삼사운동”이라며 “개신교는 우리 근현대사에서 사상적, 물질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1919년 3·1운동 직후 벌어진 제암리 학살사건은 개신교계의 선교정책에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됐다. 일제는 만세운동 주동자를 검거하기 위해 제암리 감리교회로 마을 주민들을 모은 뒤 불을 지르고 총을 쏘는 만행을 저질렀다. 당시 세브란스병원 교수였던 프랭크 스코필드는 제암리 만행을 세계에 고발했다. 이는 정교(政敎)분리 원칙 아래 소극적으로 대응하던 교계에 경종을 울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교회 담임목사로 32년간 활동한 뒤 2012년 은퇴한 강신범 목사는 “누구에게나 ‘3·8·6’ 딱 3가지만 기억해달라고 말한다. 3·1운동과 8·15광복, 6·25전쟁”이라며 “과거를 기억하는 일은 아프지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제의 제암리 학살 사건을 세계에 알린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 동상이 경기 화성시 제암교회 앞에 있다(왼쪽 사진). 근대 기독교문화유산의 요람이 됐던 대구 중구 청라언덕. 화성·대구=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한교총은 개별 교회나 교단이 진행하기 힘든 개신교 근대문화유산의 보존과 탐방을 단체 차원에서 지원할 계획이다. 서울에선 선교사들이 설립한 새문안교회와 정동제일교회, 경기와 충청에선 3·1운동 순국유적지인 화성시 제암교회와 성경 전래지로 알려진 충남 서천군 마량진, 호남은 전주와 광주의 선교사 묘역과 근대문화마을, 대구에서는 청라언덕 중심의 근대 기독교 유산 등이다.

“세상은 종교 없이 살 수 있어도, 종교는 세상 없이 살 수 없어요. 한국교회는 초기 선교사들이 뿌린 씨앗과 초심(初心)을 기억하며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류 목사)


전주·화성=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