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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 문화전문 기자
두 개의 큰 의식에서 본 윌리엄스의 존재감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여왕의 대관식에서는 그의 다른 찬송가 ‘지상에 사는 모든 백성들아’와 ‘상투스’(영광송), G단조 미사 중 ‘크레도(사도신경)’, 그가 편곡한 민요 ‘푸른 옷소매’ 등이 연주됐다. 여왕의 장례식에서는 본 윌리엄스의 교향곡 5번 3악장을 편곡한 ‘로만차’가 오르간으로 연주됐다.
영국의 민요와 옛 음악을 깊이 연구했고 엘가에 이어 20세기 초 영국 음악의 부흥을 주도한 작곡가 랠프 본 윌리엄스. 동아일보DB
그 대신 본 윌리엄스가 영감과 영향을 받은 곳은 고국 영국의 민요였다. 프랑스로 가기 4년 전 그는 영국의 전원을 다니며 시골 사람들이 부르던 노래들을 악보에 옮겨 적었다. 영국의 르네상스 음악도 공부했다. 민요에서 받은 감흥은 그가 민요를 편곡한 ‘푸른 옷소매 환상곡’으로, 르네상스 음악의 영향은 16세기 영국 작곡가 토머스 탤리스의 곡을 편곡한 ‘토머스 탤리스 주제에 의한 환상곡’으로 결실을 보았다. 두 곡 모두 서늘한 대기가 몸에 붙는 듯한, 요즘 우리나라의 계절감과도 맞는 작품들이다.
1, 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경험한 본 윌리엄스는 음악으로 평화를 호소한 작곡가이기도 했다. ‘토머스 탤리스 주제에 의한 환상곡’ 원곡은 구약성서 시편 2편을 가사로 탤리스가 쓴 성가다. 가사는 이렇다. ‘어찌하여 열방들이 분노하며 그 백성들이 헛된 일을 도모하느냐?’ 헨델이 오라토리오 ‘메시아’에서 베이스 아리아로 표현한 가사이기도 하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에서 오르간으로 연주된 교향곡 5번은 2차대전 와중에 평화를 간구하고 희생자들의 안식을 기원한 곡이다. 3악장 ‘로만차’는 17세기 영국 작가 존 버니언의 구절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는 슬픔으로 안식을 주시고 죽음으로 생명을 주셨도다.’
그의 여러 곡 중에서도 한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작품은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종달새의 비상’일 것이다. 이른 봄 날갯짓을 하는 어린 새를 묘사한 이 곡은 피겨 스케이터 김연아의 시니어 데뷔 프리 프로그램 곡으로 쓰였다. 세상으로 비상을 꿈꾸는 김연아에게 딱 맞춤한 선곡이었다.
내일(10월 12일)은 본 윌리엄스가 태어난 지 150년 되는 날이다. 영국의 여러 오케스트라와 음악축제가 교향곡 5번을 비롯한 그의 대표작을 올해 프로그램에 올렸다. 우리나라에서는 8월에 국립합창단이 그의 대작이자 첫 교향곡인 ‘바다 교향곡’을 국내 초연했다. 그의 기념 연도에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그가 한층 더 크게 기억될 기회를 마련해준 셈이다.
유윤종 문화전문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