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쌀 매입 논란, 구조적 해법은 작년 과잉생산 후폭풍으로 쌀값 45년만의 최대 하락폭 정부, 격리-매입 나섰지만, 하락 못 막자 농민들 시위 野, 남는 쌀 의무매입하도록 ‘양곡관리법 개정안’ 내놓자…
세종=최혜령 경제부 기자
《“국민의힘 측에서도 공연히 발목 잡지 마시고 쌀값 유지 정책에 대해서 흔쾌히 협력해 주길 다시 한번 부탁드린다.”(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9월 15일 전북 현장 최고위원회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굉장히 포퓰리즘적인 정책이다. (과도한) 재정 투입이나 포퓰리즘적인 정책은 일종의 마약적 요소와 독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한덕수 국무총리, 10월 3일 기자간담회)
쌀값이 45년 만에 최대 폭으로 떨어지고 의무매입 논란이 이어지면서 ‘쌀 구매’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정부가 올해 수확기에만 총 90만 t의 쌀을 사들이겠다고 발표했지만 야당은 남는 쌀을 의무 매입하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 국회 통과를 주장하고 있다. 매년 쌀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의무매입을 하게 되면 재정 악화와 쌀 과잉생산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 올해 쌀값, 45년 만에 최대 폭 하락
하지만 과잉 생산의 후폭풍은 올 초부터 불어닥쳤다. 대형마트 등 유통 단계로 넘어오면서 쌀값이 뚝 떨어졌다. 부랴부랴 정부가 초과 생산량 27만 t 중 20만 t을 우선 격리하고, 이후 시장에 남은 물량까지 10만 t을 추가로 사들였지만 쌀값 하락을 막기는 어려웠다. 급기야 농가는 논을 갈아엎고 시위를 하는 등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 농촌 지역구 민심에 쌀 의무매입 일사천리
농민들의 분노에 정치권은 발빠르게 움직였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민생 입법과제로 ‘양곡관리법 개정안’ 통과를 들고나왔다. 개정안은 쌀 초과 생산량이 전체 생산량의 3% 이상이거나 가격이 전년도보다 5% 이상 하락하면 초과 생산량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했다. 현행법에서 임의조항인 시장격리를 의무조항으로 바꾼 것이다. 이 대표가 쌀값 강경 대응을 주문한 지 하루 만인 9월 15일 민주당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위원회에서 단독으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날치기”라는 비판에도 민주당은 상임위 전체회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까지 속전속결을 예고했다. 국회 상임위 의원의 상당수가 농촌을 지역구로 두고 있어 여당도 내심 강하게 반대하지 못했다.
마음이 급해진 정부와 여당이 지난달 25일 사상 최대 규모인 45만 t의 시장격리 계획을 내놨지만 다음 날(26일) 민주당은 농해수위 전체회의에 개정안을 상정했다. 국민의힘이 안건조정위원회 회부로 맞섰지만 의결에 필요한 정족수인 3분의 2(4명)를 채운 민주당이 마음만 먹으면 안건조정위를 무력화할 수 있다.
○ 의무매입하면 연평균 1조 원 넘게 들어
매년 조 단위로 투입될 재정도 부담이다. 정부는 2021년산 쌀 37만 t을 격리하는 데 이미 약 7800억 원을 투입했다. 올해 공공비축미 45만 t과 격리물량 45만 t을 합해 총 90만 t을 사들이는 데 2조 원이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3조 원 가까운 돈이 쌀값 유지에 들어가는 셈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격리를 의무화하면 2030년에는 1조4042억 원, 그 이전까지는 연평균 1조443억 원이 투입될 것으로 분석했다. 농식품부 안팎에서는 “매년 막대한 재정을 들여 쌀을 사주면 1950년대 정부가 쌀을 수매한 것과 뭐가 다르냐”는 말이 나온다.
쌀 구매에 들어가는 예산이 늘어나면 그만큼 청년 농업인이나 스마트팜 등 미래 농업을 위한 예산이 줄어든다. 정부 관계자는 “시장격리 예산은 농업 발전을 위한 투자와 상관없는 소모성, 휘발성 예산”이라며 “청년 농업인 지원을 위해 써야 할 예산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벼 재배면적 줄여야”… 구조적 해법 필요
김태연 단국대 환경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쌀 생산을 줄이기 위해 ‘식량안보직불금’(가칭)을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전국 농업진흥지역의 10%에서 5년 동안 쌀을 생산하지 않는 대신 이들 농가에 평균 소득의 120%를 보전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휴경 농지에는 체험 관광이나 농산물 가공 등 비농업 활동을 허용하는 방안도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