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양회성기자 yohan@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이 한반도에 긴장 수위를 높이는 북한을 향해 “핵으로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경고했다. 윤 대통령이 연이은 북한의 무력 도발과 관련해 육성으로 입장을 표명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의 도발에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 협력으로 맞불을 놓은 윤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윤 대통령은 11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군사훈련 등에 대한) 입장이 나왔는데, 한미일 군사안보협력과 담대한구상 같은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가 북한의 비핵화를 끌어내는 데 여전히 유효한가’란 질문에 “유효하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윤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라는 것은 90년대 초반부터 30년간 우리도 전술핵을 철수시키고 한반도 전체에 비핵화라는 차원에서 추진됐다”며 “북한이 지금 핵을 꾸준히 개발하고 고도화하면서 우리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세계를 상대로 핵으로 위협하는 상황인데, 핵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0일 김정은 총비서의 지도 하에 전술핵운용부대들의 군사훈련을 실시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 총비서는 “적들과 대화할 내용도, 필요성도 없다“라는 강경 메시지를 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같은달 25일부터 이달 9일까지는 ‘조선인민군 전술핵운용부대’들의 군사훈련을 진행했다고 북한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밝혔다. 북한은 훈련 기간 일곱번이나 미사일을 발사했다. 올해 들어 이뤄진 미사일 발사는 총 스물아홉 번, 이 가운데 안보리 결의 위반에 해당하는 탄도미사일 발사는 스물세 차례 이뤄졌다. 지난 9일 오전 1시48분쯤 강원도 문천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한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두 발은 심야시간에 쏜 첫 사례다.
북한 군용기의 편대 비행도 잇달았다. 지난 6일 전투기 8대와 폭격기 4대를 이용해 시위성 편대비행을 했는데, 이틀 후인 8일에는 군용기 150여대를 동원해 ‘대규모 항공공격 종합훈련’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북한은 저수지에서 탄도미사일을 ‘수중발사’하는 신기술도 선보였다.
북한의 긴장 고조 움직임을 우리 정부는 7차 핵실험으로 가는 단계별 시나리오라고 보고 있다. 북한의 마지막 핵실험은 문재인정부 초기인 지난 2017년 9월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은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단순히 ‘여섯 번의 핵실험에 플러스 원(1)’으로 보지 않는 기류가 강하다.
윤 대통령은 현상황의 초점을 대북억제력에 맞춰놓고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존중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한미동맹을 통한 강력한 대북억제력, 즉 북한이 무력시위뿐 아니라 핵실험 자체를 막는 쪽으로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대통령실이 3일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순방 사진을 추가 공개했다. 사진은 지난달 29일 오후(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 이페마 국제회의장에서 한미일 정상회담 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는 윤 대통령의 모습. 대통령실 제공
이를 기반으로 지난달말에는 2017년 이후 5년만에 미국의 핵 추진 항공모함인 ‘로널드 레이건’(CVN-76)이 참가하는 한미 해상 연합훈련이 동해상에서 실시됐다. 같은 달 30일부터는 한미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가 동해상에서 대(對)잠수한전 연합훈련을 실시했다. 한미일 연합 해상훈련 및 대잠전 훈련 역시 2017년 이후 5년 만이다.
특히 레이건함은 이달 6일 북한이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을 발사하자 모항으로 돌아가다 동해로 뱃머리를 돌려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대북억제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정부 차원에서 ‘총력 대응’에 나설 것이 유력시 된다. 정부와 대통령실에서 구체적인 언급은 나오지 않지만 강력한 한미동맹을 토대로 확장억제의 획기적인 강화 움직임에 무게가 쏠린다.
윤 대통령은 지난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피력하는 순간부터 경제적 지원이 이뤄지는 ‘담대한 구상’을 밝히면서 대화의 손길도 내민 상태다. ‘담대한 구상’은 △발전·송배전 인프라 지원 △항만·공항 현대화 △농업기술 지원 △병원·의료 인프라 현대화 △국제투자·금융 지원 등이 골자다.
윤 대통령은 ‘한일 군사협력에 대한 국민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인데, 이런 우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란 질문에 “핵 위협 앞에서 어떤 우려가 정당화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전술핵 보유’에 대해서는 “대통령으로서 지금 이렇다저렇다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며 “우리나라와 미국 조야에 여러 의견들을 잘 경청하고 따져보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