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방’이 펴낸 발달장애 예술 창작 지원 안내서 ‘무엇’ 북토크 현장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청파로에 있는 책방 죄책감에서 창작그룹 \'밝은방\'이 만든 책 \'무엇\'의 북토크가 열렸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청파로에 있는 책방 죄책감에서 창작그룹 ‘밝은방’이 만든 책 ‘무엇’의 북토크가 진행됐다. 밝은방은 독자적인 예술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발달장애인 창작자들과 다양한 예술표현을 시도하고 이를 전시회나 책으로 소개하는 창작그룹이다.
‘밝은방’은 지난해 발달장애인의 주변인(부모, 보호사, 예술강사 등)이 발달 장애인의 시각적 표현을 이해하고, 시각예술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안내서 ‘무엇’을 제작했다. 이 책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원장 박은실)이 장애인의 문화예술 활동 범위가 확장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비대면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개발 및 활성화 지원사업 ‘만날 사람은 만난다’ 중의 하나로 제작됐다.
발달장애인 창작자들은 보통 특정 주제와 스타일의 그림을 반복해서 그리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그들은 처음에는 A4 용지에, 달력의 뒷면에, 벽지에 볼펜이나 사인펜으로 낙서같은 그림을 그린다.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그림에 집중할 때는 정말로 행복한 표정이다. 이를 지켜보는 부모들의 마음은 애가 탄다. 왜 매일 똑같은 그림을 그릴까. 왜 남들처럼 친구들과 소통을 못하고 혼자서 그림만 그릴까. 저런 낙서가 예술인가?
발달장애인의 창작 행위는 주로 자신의 방에서 소박하고 일상적인 재료를 사용하여 자신의 내면이나 자신이 몰두한 세계를 표현하는 데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흔히 ‘자폐적’, 또는 ‘병이나 장애의 증상’으로 여겨지곤 한다.
이 책에는 다양한 사례들이 등장한다. 정종필 씨(32)는 특정 뉴스에 나오는 아나운서와 배우의 얼굴, 학습지에서 익혔던 삽화 등 자신에게 특별한 인상으로 각인된 인물을 모나미 볼펜으로 반복적으로 그린다. 이런 그림을 그린 A4 용지가 수천장이 쌓였다. 부모는 똑같은 그림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해 수없이 갖다 버리기도 하고, 종이와 볼펜을 숨기기도 했다. 그러나 똑같아 보이는 그림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표정과 의상, 헤어스타일이 바뀌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창작 지원자들이 발견해낸다. 이렇게 예술 창작 지원자들은 집 안에 숨겨진 수많은 그림과 작업 노트를 발견하고 스크랩을 하면서 예술 창작자로 성장하는 것을 도와준다.
정종필 창작자가 수없이 반복적으로 그리는 뉴스 아나운서 그림.
윤미애 '나의 아버지'.
김경두의 로봇.
김현우 '픽셀의 도시'.
'픽셀 김'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김현우 작가.
“발달장애인들의 경우에는 자신만의 루틴을 계속 지켜가고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코로나가 지속되면서 창작자가 지원 단체나 작업실에 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예술 강사나 예술가를 못 만나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창작자 가족을 비롯한 주변인이 이들의 창작을 이해하고 지원하는 방법에 대해 15년 동안의 노하우를 정리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김효나 작가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발달장애인 창작자의 시각적 표현을 이해하고 지원하기 위한 아트북 ‘무엇’을 기획하고 제작할 수 없었다”며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은 단기간의 체험이 아니라, 창작자의 삶, 그리고 창작지원자의 삶에 서로 영향을 끼치는 우정의 형식이 되어야 하고, 이를 위한 정책적 모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