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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가족 이민 과정, 편견 없이 솔직하게… ‘제2의 미나리’ 주목

입력 | 2022-10-12 03:00:00

부산영화제 한국계 감독 작품 2題
‘라이스보이 슬립스’
‘LA 주류가게의 아메리칸 드림’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에서 캐나다로 이민 간 소영(최승윤)이 아들 동현(도현 노엘 황)에게 한국 고전소설 심청전을 읽어주는 모습(위 사진). 아래 사진은 ‘LA 주류가게의 아메리칸 드림’에 나온 엄소연 감독(왼쪽)과 그의 아버지. 엄 감독 아버지는 실제로 LA에서 주류가게를 운영한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제2의 미나리.’

14일까지 열리는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 초청된 두 영화에 붙은 별칭이다. 한국계 미국인 엄소연 감독(33)의 다큐멘터리 ‘LA 주류가게의 아메리칸 드림’과 한국계 캐나다인 앤서니 심 감독(36)의 ‘라이스보이 슬립스’가 그 주인공. 두 작품 모두 한인 가족의 이민 정착 과정을 다룬다는 점에서 배우 윤여정에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안겨준 영화 ‘미나리’에 비견되며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혼인신고도 하기 전에 남편과 사별하는 바람에 싱글맘이 된 소영(최승윤)이 1990년 먹고살겠다는 일념으로 초등학생 아들 동현(도현 노엘 황)과 캐나다 밴쿠버로 떠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동현은 도시락으로 김밥을 싸왔다는 이유로 ‘라이스보이’라고 놀림받으며 인종차별을 당한다. 소영은 공장에서 내내 서서 일하며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이민 생활 9년 만에 얻은 건 췌장암 4기 진단. 실제 8세 때 이민 간 심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에서 “내가 겪은 이야기와 다른 이민자들의 경험을 녹여 만들었다”고 했다.

후반부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소영이 동현과 함께 10년 만에 시부모를 만나러 한국에 오는 내용으로 채워진다. 캐나다에서의 모습은 1.33 대 1, 즉 과거 TV 화면 비율로 답답한 느낌이 들게끔 담아낸 반면 한국은 탁 트인 화면에 담아냈다. 심 감독은 “캐나다라는 큰 땅에 사는 이민자들의 외로움을 강조하고 싶어 좁은 화면을 택했다”며 “한국 땅은 좁지만 해방감을 주는 만큼 큰 화면에 담았다”고 했다.

‘LA 주류가게의 아메리칸 드림’은 1960, 70년대 미국으로 건너간 뒤 로스앤젤레스(LA)에서 주류가게를 연 ‘주류가게 1세대’와 이들의 자녀 이야기를 다룬다. 1980년대 로스앤젤레스 남부 지역 주류가게 운영자의 75%가 한인일 정도로 주류가게는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었다. 엄 감독은 최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나도 LA ‘주류가게 베이비’”라며 “내가 가장 잘 아는 이야기를 다뤄 보고 싶었다”고 했다. 이어 “‘폴링다운’(1993년) 등 1980, 90년대 할리우드 영화 상당수는 한인 가게 주인을 우스꽝스럽고 편협한 캐릭터로 묘사해 왔다”며 “이민자 입장에서 우리를 제대로 다뤄 보고 싶었다”고 했다.

1992년 로스앤젤레스 흑인 폭동의 원인을 한인, 흑인 등 누구의 잘못도 아닌 미국 사법 시스템의 문제로 짚어낸 점도 눈에 띈다. 주류가게를 이어받은 2세와 엄 감독처럼 꿈을 좇아가는 2세 등 자녀 세대의 다양한 모습도 보여준다.



부산=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