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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만에 지킨 약속[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264〉

입력 | 2022-10-12 03:00:00


한없이 순수한 사람들이 있다. 그 순수함으로 어두운 세상을 덜 어둡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2021년에 맨부커상을 수상한 남아프리카 작가 데이먼 갤것의 ‘약속’은 그러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아모르라는 인물이 그러하다. 그는 농장에 사는 스워트 부부의 막내딸이다. 죽어가는 아내가 남편에게 부탁을 한다. 평생 자신을 돌봐줬을 뿐만 아니라 암에 걸려 죽어가는 자신의 병 수발을 해준 흑인 가정부 살로미에게 지금 거주하는 집의 소유권을 넘겨주라는 부탁이다. 남편은 그러겠다고 한다.

그러나 아모르의 아버지는 어머니가 죽자 약속을 팽개친다. 하인에게 집을 주는 건 말이 안 되고 어차피 흑인이 집을 소유하는 건 불법이라는 거다. 그는 아모르가 그것이 어머니의 유언임을 상기시켜도 끄덕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버지가 지키지 않으면 아들이라도 지켜야 되는데 아들도 마찬가지다. 그는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키지 않는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아버지도 죽고 아들도 죽고 큰딸도 죽는다. 간호사가 되어 다른 도시에서 에이즈 환자를 돌보는 아모르만 남았다. 아모르는 드디어 아버지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된다. 그러기까지 3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비가 오면 지붕에서 물이 줄줄 새는 허름한 집 하나를 주는 데 그렇게 오랜 세월이 소요된 거다. 아모르가 느끼는 미안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런데 그는 집만이 아니라 자기 몫으로 남겨진 모든 돈까지 살로미에게 주기로 결심한다. 그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죽어가는 환자들을 돌보는 간호사로 살 것이다.

무엇이 그를 다른 가족과 달리 행동하게 만드는 걸까. 자기 것까지 다 내어주고 환자들에게 헌신하겠다는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무엇이 그를 윤리적인 존재로 만드는 걸까. 모를 일이다. 그의 이타적인 행위는 그의 영혼 깊숙한 곳에서 저절로 나오는 것인지 모른다. 그렇게 세상을 덜 어둡고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