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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만 3개국서 개인전…‘수묵화 거장’ 박대성 화백 작업실 가보니

입력 | 2022-10-12 14:32:00


박대성 화백, 가나아트센터 제공


청명하고도 쌀쌀했던 11일 경북 경주시. 

한국화 거장 박대성 화백(77)의 작업실은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박 화백을 “스승님”이라 부르는 이순자 씨(65)는 2007년 박 화백이 시민들을 상대로 무료 그림 수업을 진행하는 ‘우리 그림 교실’ 1기 수강생. 

15년간 연을 이어온 이 씨는 “스승님께서 최근 해외 일정으로 바쁘셔서 한국에 오셨다길래 냉큼 찾아왔다”며 “그림에서 묻어나는 엄격한 정신력을 외국에서도 알아본 것 같다”고 기뻐했다.

그의 말마따나 올해는 박 화백에게 가장 바쁜 해다. 4월 독일, 6월 카자흐스탄, 7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9월 미국 하버드대 한국학센터, 다트머스대 후드미술관, 10월 주이탈리아 한국문화원도 예정돼있다. 내년에도 미국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메리워싱턴대에서 전시가 이어진다.

22일 하버드대와 다트머스대 전시를 위해 또 한번 미국으로 나서는 그는 해외에서의 주목에 대해 “우리만 우리를 너무 모른다”고 했다. 국내에서 한국화를 도외시하는 데에 대한 섭섭함을 에둘러 표한 말이었다. 

외국 관객들의 극찬은 한국화가 주는 낯섦 때문만은 아니다. 박 화백은 전통 수묵화를 현대미술로 재해석해왔다.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다. 일평생 ‘보이지 않는 뿌리’를 찾았기 때문에 관객들이 그 진정성을 느낀 것이다.” 56년 화업을 이어온 화가의 자평이었다.

LACMA 전시 전경, 가나아트센터 제공



그가 말한 뿌리는 글자다. 박 화백은 화가가 되기로 한 유년시절부터 그림 공부의 기초를 글씨에서 찾았다. 제사 지방문과 병풍을 따라 그리던 그는 이후 대만과 중국에서 서예를 공부했고 상형문자의 원형을 찾아 히말라야를 다녔다. 

“인류의 근간이 되는 상형 속에는 삼라만상이 다 들어있지. 그 자체가 최고급 디자인이야. 이걸 백번 활용해야지.” 

박 화백은 여전히 매일 글씨 연습을 하고, 그 안에서 그림을 구상해낸다.

최근 떠오른 심상도 있다. 박 화백은 현재 너비 13m, 높이 5m 대작을 준비 중이다. 경주솔거미술관에 전시된 그의 대작 ‘몽유신라도원도’(11.5×5m)보다 더 크다. 화폭에는 백두산, 한라산, 금강산이 뼈대를 잡고 고구려 벽화, 반구대 암각화, 유물 20여 점이 속속들이 그려질 예정이다. 

“나의 마지막 대작일 것”이라는 이 작품의 이름은 ‘코리아 환타지’. 그는 “나는 영어를 하는 사람이 아닌데 그렇게 짓고 싶었다. 수묵이지만 더 많은 국적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르면 올해 말 완성될 예정이다.

박대성, 몽유신라도원도, 가나아트센터 제공


이 작품은 첫발에 불과하다. 그는 앞으로 “세계적인 그림을 그릴 것”이라고 했다.


“신라의 형상을 모본 삼아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는 ‘나’의 것에서 ‘우리’의 것으로 더 나아가야지. 더 단순하고 시원하게. 어느 누가 봐도 ‘내 그림이다’ 할 수 있도록.” 

한국적 오브제들을 없앤다는 말은 아니다. 그는 “열 번 손대어 그렸던 그림이라면 그 획수를 줄여 간명하면서도 폭발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원로 거장 반열에 올랐음에도 새로운 시도는 그에게 즐거운 일이다. “인생은 원래 고행”이고 “타성에 젖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5살 때 한국전쟁으로 부모와 왼쪽 팔을 잃었다. 독학으로 미술에 입문했다. 21살 등단 후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8번이나 상을 받았다. 1984년 가나아트 1호 전속작가가 됐고, 고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의 월급 화가로도 일했다. 

그는 굴곡진 삶을 회고하며 “예술가는 운이 있어야 하고 억척스러워야 한다”고 했다. 그에게 가장 큰 운은 무엇이냐 묻자 ‘팔을 잃은 것’이라고 했다.

“나는 팔을 잃었고, 병신 소리가 듣고 싶지 않아 집에 틀어박혀 그림만 그렸지. 불운을 잘 다루면 그 어떤 행운보다도 더 큰 운이 된다고.”

박 화백은 “고비마다 붓을 잡아보라”고 권했다. 홀로 그림에 임했지만, 붓을 벗과 스승 삼아 일생을 보낸 화가의 덧말이었다.

“붓은 연필과 다르게 내가 가고자 하는 길로 잘 따라와 주지 않을 때가 있어. 필법(筆法)이란 게 존재하는 이유지. 이 시대 우리들은 붓을 잡을 수 있어야 해.”

박대성 화백, 가나아트센터 제공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