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에게 비핵화 의지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국민을 속였나 협상에 목매다는 동안 北전술핵 개발 ‘안보 무너뜨린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9월 1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평양공동선언문에 서명한 후 합의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에 대한 의지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재임 중 마지막 신년 회견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했던 말이다. 2021년 1월 18일, 그러니까 북한 김정은이 8차 당 대회에서 전술핵무기로 남한 선제공격 가능성을 처음 공식화한 지 닷새 만이었다.
대한민국 공무원이 북한 수역에서 북한군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보고를 받고도 구조하라는 말 한마디 않던 대통령이다. 그런데 어떻게 공감능력을 발휘해 김정은에게는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자신했는지 궁금하다.
문 전 대통령은 “다만 북한이 요구하는 것은 그 대신에 미국으로부터 확실하게 체제의 안전을 보장받고 또 미국과의 관계가 정상화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이기는 했다. 2018년 3월 정의용 대북 특사단이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와 “북측이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며 덧붙인 것과 똑같은 말이다.
안타깝게도 문 전 대통령이 잘못 본 대목이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출신 미 국무부 동아태지역 박정현 부차관보가 ‘비커밍 김정은’에서 분석했듯, 김정은은 보기와 달리 샤프하다는 사실이다. 그는 세계 최초로 공산주의 왕조 세습에 성공한 김일성에게 노하우를 배운 김정일의 아들이다. 체제 안보는 물론 정통성 확보에 핵이 필수적임을 안다. 부친 사망 두 달 전 리비아의 원수 알 카다피의 죽음을 보고 절대 핵을 포기하면 안 된다는 교훈도 되새겼다. 적절할 때 방향을 전환하고 전술을 바꾸는 탁월한 능력까지 갖췄다.
그가 ‘연장자를 제대로 대접(하는 척)하는 데’ 문 전 대통령이 넘어갔을 수 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 특히 북한의 협상엔 공식이 있다는 것쯤은 문 전 대통령도 알아야 했다. ①큰 원칙에 (때로는 감동적으로) 합의한다 ②합의를 멋대로 해석해 세부 합의를 이끌어 내려 한다 ③제 뜻대로 안 되면 일방적으로 결렬을 선언한다 ④상대에게 결렬 책임을 전가하는 식이다. 문 전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 2018년 북-미 싱가포르 회담과 2019년 북-미 하노이 회담은 정확히 이 공식에 따라 진행됐다.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도 감동의 도구였을 수 있다. 대통령으로서 몰랐다면 한심하고, 알고도 국민을 속였다면 그 죄를 씻기 어렵다.
국민 앞에 미안했는지 문 전 대통령은 퇴임 전 ‘문재인의 5년 대담’에서 ‘김정은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긍정적이냐’는 질문에 “지금은 평가하기에 적절한 국면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발사됐고 이것은 분명히 레드라인을 넘는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제 북한이 선제타격을 포함한 핵무력 법제화에 이어 전술핵 운용 부대의 실전훈련까지 하는 상황이 됐다. 여권 일각에선 전술핵 재배치론까지 언급되고 있다. ‘대담’ 당시 문 전 대통령은 “북이 핵을 포기하지 못한다면 한국도 핵을 가져야 된다라는 주장이 비등해질 수 있는데 정치인들이 삼가야 할 주장, 어처구니가 없는 주장, 기본이 안 된 주장이고, 정말로 나무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어렵게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뒤 “우리는 여러 세대에 걸쳐 번영을 누릴 것이며 안보를 확보해줄 것”이라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은 ‘잊혀진 사람’으로 남고 싶다면서도 뜬금없는 책 소개로 소일하는 듯하다. 여러 세대에 걸쳐 북한 독재자에게 핵 선제공격까지 가능하게 해준 대통령으로 기억되지 않으면 다행이겠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