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공동 캠페인 충남 당진시 ‘원당꿈초롱 작은도서관’… ‘당진 신진문학인’ 50대 작가 홍정임 7년전 작은도서관 처음 접한 뒤… 책 한권 안 읽다 매주 독서 토론회 작년 코로나로 도서관 잠시 문닫자… 집에서 홀로 시 쓰며 아쉬움 달래
홍정임 씨가 5일 충남 당진시 ‘원당꿈초롱 작은도서관’에서 지난해 11월 펴낸 시집 ‘익숙함과의 이별 후’를 들고 있다. 옆에 있는 캘리그래피는 책 속 감명 깊은 구절이나 자신의 시를 그가 직접 쓴 것이다. 당진=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마음속 스크린이 불을 켜면/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사람들이 손짓을 해요/ (중략) 시간은 해일처럼 눈앞에 다가와/ 현실의 문을 자꾸 두드리는데/ 아! 어떡하죠/ 이제야 재미를 알아 버렸는데’(시 ‘작은 도서관’ 중)
충남 당진시 ‘원당꿈초롱 작은도서관’ 이용자 홍정임 씨(55)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잠시 도서관이 문을 닫자 집에서 홀로 시를 썼다. 도서관에서 책에 푹 빠지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창작을 시작한 것. 그는 17편의 작품을 출품해 ‘당진 신진 문학인’에 선정됐고 65편의 시를 모아 지난해 11월 시집 ‘익숙함과의 이별 후’(책과나무)를 펴냈다.
5일 찾은 원당꿈초롱 작은도서관은 194m² 규모로 아담하지만 약 1만8000권의 책으로 가득했다. 홍 씨는 자신의 시집을 들어올리며 시에 담은 마음을 수줍게 고백했다.
작은도서관은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KB국민은행 후원을 받아 전국 각지에 짓고 있다. 2008년 경기 부천시 도란도란도서관으로 시작한 작은도서관은 전국 곳곳을 채워 100개에 달한다. 2008년 5월 문을 연 원당꿈초롱 작은도서관은 7호 작은도서관이다.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은 2019년 이 작은도서관의 전면 리모델링을 했다.
제주가 고향인 홍 씨는 2000년 결혼과 동시에 당진에 자리 잡았다. 15년 동안 전업주부로 남편 뒷바라지와 두 아들의 육아만 하고 살다가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에야 여유가 조금 생겼다. 남편과 두 아이를 아침에 챙겨 보낸 뒤 텅 빈 집에서 헛헛한 마음을 달래던 차에 지인에게 “작은도서관에서 독서 토론 동아리 회원을 모집하니 가입해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전업주부로 지내며 책 한 권 제대로 못 읽었던 그였지만 2015년부터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원당꿈초롱 작은도서관에 드나들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7년 동안 1주일에 1번씩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시야가 넓어졌어요. 같은 책을 읽어도 내 생각과 남의 생각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죠. 책 한 권 안 읽던 제가 독서 토론 동아리 회장까지 맡게 됐습니다.”
그는 독서를 시작한 뒤 좋아하는 문장을 필사하다가 2016년부터 캘리그래피를 배우기 시작해 캘리그래피 준전문작가 자격증까지 땄다. 올 8월 수필 창작 동아리 회원들과 시화전을 열기도 했다.
그는 최근 수필 창작 동아리에 가입해 에세이를 쓰고 있다. 올해 3월부터는 일주일에 두 번씩 초등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치고 있다.
“시바타 도요(1911∼2013)라는 일본 시인이 있어요. 평범한 할머니였지만 92세에 시 쓰기를 시작하고 98세에 첫 시집 ‘약해지지 마’를 펴냈는데 일본에서 150만 부가 팔려 화제가 됐죠. 저 역시 나이가 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만 했는데 작은도서관을 만난 뒤 하고 싶은 일이 많아졌습니다. 제 세상이 아주 넓게 확장됐어요!”
당진=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