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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진영]‘여가부 폐지’로 무엇을 하려 하나

입력 | 2022-10-13 03:00:00

젠더 격차의 주범은 경제활동 격차
여성 경제활동 돕는 조직개편 돼야



이진영 논설위원


‘여인들은 남자의 위안물로 창조되었다’ ‘유리와 처녀는 항상 위험하다’ ‘여자의 아량 중 하나는 허락하는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문장을 동서양의 ‘금언’이라며 정부 관보 자투리 지면에 소개하던 말도 안 되는 시절이 있었다. 1990년의 일이다. 32년이 지난 지금은 여성가족부 폐지를 놓고 논쟁하고 있다. 성인지 감수성의 퇴행일까, 여성정책 성공의 역설일까.

여가부 폐지 찬반론자들이 공통적으로 인용하는 데이터가 있다. 세계경제포럼 젠더격차지수(GGI)로 한국은 캄보디아보다 뒤지는 99위다. 한쪽에선 여성행정 전담 조직을 신설한 때가 1988년인데 아직도 GGI가 하위권을 못 벗어나고 있으니 여가부 아닌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쪽에선 구조적 성차별이 여전한데 여가부 폐지가 웬 말이냐고 한다. GGI는 여성 지위의 절대적 수준이 아닌 남녀 격차만을 따지므로 해석엔 신중해야 하지만 고용 부문에서 성차별이 심각하다는 평가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GGI 4개 부문 중 순위가 가장 뒤지는 부문은 ‘여성의 경제적 참여’로 에티오피아보다 못한 115위다.

이제는 아들딸 차별해서 키우는 집은 없다.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은 2010년부터 남학생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졸업하고 사회에 나서는 순간 이등시민이 된다. 여성 경제활동참가율(60%)은 경제협력개발기구 35개 회원국 중 31위다. 남성보다 20% 낮다. 남성이 시간당 2만2637원을 받는 동안 여성은 1만5804원을 받는다. 올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설문조사에서 남녀 응답자 모두 강화해야 할 여가부 기능 1위로 꼽은 것이 ‘여성의 경제활동 지원’이었다. 이제 여성정책의 최대 목표는 경제활동 젠더 격차 해소이고, 여가부 조직 개편의 적절성도 이 기준으로 따져봐야 한다.

정부 개편안에 따르면 여가부의 경력단절여성 업무는 여성고용 업무를 맡고 있는 고용노동부로 이관된다. 비슷한 업무를 한데 모으는 건 효율적이고, 그 업무를 고용부에 두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본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려면 여성 인력 활용이 필수적이다. 여성 고용을 여성 문제가 아니라 경제정책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이 81%가 넘는 스웨덴도 고용부가 양성평등 업무를 한다. 문제는 고용부 이관 이후의 청사진이 없다는 점이다. 성별 고용률과 임금 격차 해소를 중요한 노동개혁 과제로 다룬다는 의지를 이번 개편안에 담았더라면 설득이 쉬웠을 것이다.

여가부의 나머지 업무는 보건복지부에 신설되는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로 통합된다. 지금처럼 아동과 노인은 복지부, 청소년과 가족은 여가부가 맡는 건 정책 수요자를 무시한 억지 나누기다.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고용률이 확 떨어져 이를 회복하기까지 21년이 걸린다. 자녀가 한 명 생기면 취업 유지율이 30%포인트 감소한다. 일과 육아의 병행을 돕는 돌봄, 여성권익, 저출생 대책을 아울러 시너지를 내는 본부가 돼야 할 것이다. 덩치 큰 본부를 독일처럼 독립 부처로 떼어 놓을지, 복지부에 둘지는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

여가부 폐지 못지않게 조직 이름에서 ‘여성’이 빠지는 걸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2001년 신설된 여성부 영문명을 지을 때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당시 한명숙 장관은 남성들의 반감을 의식해 ‘Women’ 대신 ‘Gender Equality’로 정했다. 헌법상 남녀평등 이념을 실천하는 부처라는 자부심도 담았다고 한다. 영문명에서 앞서갔던 시대정신을 한글명에서도 따라야 할 때라고 본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