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패션위크가 끝나고 이틀 뒤인 6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한국 아이돌 무대의상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이 보이그룹 NCT 127이 공연할 때 입었던 옷들을 살펴보고 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조은아 파리 특파원
《“프랑스에서 엑소 의상을 직접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어요. 무척 놀랐고 기뻤어요.” 6일 프랑스 파리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K팝 아이돌 무대의상 전시회에서 만난 이지스 데코르 씨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옷들을 둘러보다가 여성 아이돌이 입었던 하얀 의상을 가리키며 “보는 순간 너무 예뻐서 눈을 떼지 못했다”면서 “한국 패션은 특히 여성 분야에서 탁월하다”고 말했다.》
‘사운드 오브 K패션’을 주제로 열린 이날 전시회에는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의 무대의상 약 20벌과 한국 패션 쇼룸 ‘더셀렉츠’ 입점 브랜드 10여 벌이 전시됐다. 보이그룹 ‘NCT 127’이 입은 빨강 보라 핑크 등 현란한 색상 의상에 많은 사람이 몰렸다. 걸그룹 ‘에스파’의 미니 원피스는 화려한 액세서리와 정교한 커팅이 돋보였다.
이날 전시는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4일까지 열린 파리 패션위크를 뒤흔든 K팝 스타 열풍을 계기로 K패션을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전 세계 디자이너의 ‘꿈의 무대’인 파리 패션위크에는 블랙핑크, 에스파를 비롯한 한국 아이돌이 명품 브랜드 홍보대사로 초청돼 큰 인기를 끌었다. 이에 힘입어 한국 패션까지 독특하고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K팝 스타를 1열에 모셔라”
지난달 27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명품 브랜드 디올 행사에 참석한 블랙핑크 멤버 지수가 관람석에 앉아 있다. 파리=AP 뉴시스
명품 브랜드들은 K팝 아이돌에게 열광하는 세계 젊은이들을 잠재적 고객으로 보고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K팝 스타 잡기에 혈안이 됐다는 취지의 분석이 나온다. 유럽에서 K팝 인기는 더욱 고조되고 있다. 에스파가 최근 파리에서 연 팬사인회에는 젊은 팬들이 대거 모여들어 현지 언론과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됐다. 방송에서도 비중 있게 보도할 정도였다.
프랑스 일간 라데페슈뒤미디는 지난달 30일 “지난 몇 달 동안 K팝 스타를 영입하지 않은 명품 기업이 어디 있겠는가”라며 “한국 아티스트들의 (소셜미디어) 팔로어 수천만 명은 까다로운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태어난 세대) 관심을 끄는 데 아낌없이 투자하는 럭셔리 브랜드 잠재 고객”이라고 설명했다.
아이돌과 메타버스 NFT 사업도
명품 브랜드는 K팝 스타와의 협업 영역을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불가리는 최근 네이버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 ‘불가리 월드’에서 자사 홍보대사인 블랙핑크 리사가 팬들과 만나 셀카를 찍는 행사를 열어 인기 몰이를 했다. 제페토에서는 블랙핑크 관련 아이템이 올 8월 기준 1300만 개 이상 판매됐다. 제페토와 블랙핑크가 함께 작업한 뮤직비디오 조회 수는 1억3000만 회를 넘어섰다.패션 브랜드 빅터웨인산토는 한국 걸그룹 ‘라잇썸’과 함께 대체불가토큰(NFT)을 내놓는다. 빅터웨인산토는 라잇썸 멤버 8명 각각의 개성을 반영한 의상을 디자인해 NFT로 발행할 예정이다. 이 디자인은 애니큐브 ‘더 샌드박스’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아이템으로 활용된다. 디자이너 빅터 웨인산토는 글로벌 패션저널 WWD에 라잇썸과 함께 미국 로스앤젤레스 K콘서트를 다녀온 경험을 소개하며 “K팝 팬들은 좋은 의미로 히스테릭하다”고 말했다. 그만큼 팬덤이 열광적이어서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에 대한 몰입도가 높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파리 패션업계 ‘러브콜’은 K팝 아이돌을 넘어 다양한 아티스트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젊은층 인기가 높은 프랑스 패션 브랜드 메종키츠네는 웹툰 작가가 그린 그림을 의상에 디자인해 판매하고 있다. 패션위크 기간 서울에서 영감을 얻어 구성한 팝업 스토어를 열어 한국 스타일리스트와 협업한 생활용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K패션, 자유롭고 아방가르드해”
아이돌이 사랑을 받으며 아이돌이 입는 한국 패션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프랑스인들은 한국 패션 디자인이 프랑스에 비해 아방가르드(혁신적)하고 더 자유롭다고 입을 모았다. 아이돌 무대의상 전시회에서 만난 학생 주디스는 “프랑스 옷은 좀 더 중립적인 색상을 많이 쓰는 반면에 한국 옷은 색상이 더 다양하다”고 말했다. 파리에서 패션 컨설턴트로 일하는 스테파니 뮤에 씨는 한국 브랜드 옷을 실제로 사봤다며 “프랑스 옷은 전통적인 데 비해 한국 패션은 아방가르드하고 매우 자유로우면서 젊다”고 평했다.
K패션에 대한 관심은 젊은층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날 아이돌 무대의상을 구경하던 40대 안나 제아노 씨는 “전시를 보기 위해 북부 노르망디에서 달려왔다”며 “한국 드라마에서 한국 패션을 많이 접해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국내 패션 브랜드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2년 넘게 중단됐다가 모처럼 오프라인으로 활발하게 열리기 시작한 각종 패션 행사에서 판매를 비롯한 각종 성과를 내고 있다. 국내 남성복 브랜드들도 파리 명품 백화점 입점을 논의 중이다.
패션과 뷰티 분야를 결합해 시너지를 내보려는 목표를 갖고 해외에서 코스메틱 브랜드를 선보인 디자이너 이청청 씨는 파리 패션위크에 참석해 “그동안 파리나 영국 등의 바이어들이 관심을 보였는데 이번에는 우리에겐 낯선 동유럽 바이어들도 구매를 문의해왔다”며 “파리에서 만난 현지 기자나 바이어도 ‘한국에 꼭 가서 한국 패션을 직접 느껴보고 싶다’고 했다”고 전했다.
패션 세일즈 에이전시 아이디파리 김다은 대표는 “젊은 디자이너들은 기성세대보다 기획 능력이 빠르고 더 창의적인 반면에 사업 규모가 작아 해외 시장 진출에 어려움이 많다”며 “이들이 시장에 잘 적응하고 성과를 내도록 도와줄 수 있는 마케팅과 영업 인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조은아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