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그 후-‘못다 한 이야기’] 영화 범죄도시 강윤성 감독 편 2
‘범죄도시’의 강윤성 감독과 저작권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인터뷰가 나간 뒤 이런 말을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처음부터 감독들이 제작사와 계약을 잘 맺으면 된다는 것이죠. 정말로 영화를 잘 만들 자신이 있다면, 계약금도 충분히 받고, 다음에 발생할 흥행도 고려해 계약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정당한 보상’ 요구도 애초에 창작자들이 저작권을 제작사에 안 넘겼다면 벌어지지 않을 문제라는 것이죠. 물론 그렇습니다. 스스로 계약을 불리하게 해놓고, 나중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은 좀 이상해 보일 수 있습니다. 저 또한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해서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오징어게임처럼 초대박 작품을 만든 감독이 아닌 한 제작사와 대등한 계약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하더군요.
대부분의 감독이 추후 발생하는 수익은 고사하고, 계약금도 많이 요구하지 못하는 데는 이런 현실도 있다고 합니다. 한정된 제작비에서 감독 계약금을 올려줄 경우 다른 부문, 예를 들어 컴퓨터 그래픽이나 음악 같은 곳에 쓸 돈이 줄어든다는 것이죠. 영화를 찍을 기회도 적은 감독들이, 간신히 찍게 된 작품의 질을 떨어트리면서까지 자기 계약금을 올려 받기는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작품 활동은 물론이고, 생계조차 불투명하다면 누가 영화 산업에 뛰어들겠습니까. 강 감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국회에서 저작권법이 개정돼 외국에서 저작권료를 받게 되면 저작권 관리 단체가 그중 일부를 적립해 창작자들을 위해 쓸 계획이라고요.
세계의 저작권 관리단체들은 저작권료 수입액의 일정 비율을 창작자들을 위한 생활 및 의료 지원금, 복지 등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느 분야나 비슷하겠지만 창작 활동은 직업 안정성이 굉장히 떨어지기 때문에 꾸준히 일한다는 게 쉽지 않지요. 마음이 불안한데 어떻게 좋은 작품이 나오겠습니까. 적더라도 자기 작품으로 인해 꾸준히 수입이 생기거나, 혹은 저작권료 수입을 통한 기금으로 작품 활동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K 콘텐츠가 양산될 수 있을 것입니다.
비교가 적당한지 모르겠습니다만, 과거 한국 축구가 월드컵이나 올림픽에서 대패하고 나면 유소년 축구부터 육성해야 한다, 잔디 구장이 필요하다, 체계적인 선수 육성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인프라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다른 분야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유독 영화 분야는 우리 작품이 아카데미상, 에미상을 탈 때마다 K 콘텐츠가 중요하다고 그렇게 얘기하면서도 그 뒤에 가려진 잘못된 현실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적은 것 같습니다. 좋은 작품은 땀으로 만들어야지, 피로 만들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