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현 이코노미스트가 속한 신한은행 S&T센터는 지난달 말 ‘4분기 환율이 1500원 마저 넘어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보고서를 냈다. 김재명 기자
킹달러 시대, 왜 유독 원화가 약할까?
-원·달러 환율이 1430원 선을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이 정도 환율은 올해 상반기까진 예상하기 어려웠던 수준 아닌가요?“전망치 상단을 깨고 환율이 계속 올라가다 보니 저희도 계속 전망치를 올릴 수밖에 없었어요. 전망치를 올릴 때마다 양치기 소년이 된 듯한 기분이어서 자괴감이 들었죠.”
“과거 패턴을 보면 금리 인상의 종점에 다다르고 ‘이제 추가 인상은 없다’라는 컨센서스까지 생겨야 달러화가 꺾입니다. 지금은 내년 상반기 중에 연준이 금리 인상을 마무리할 것이라고 보고 있어서, 내년 상반기에 변곡점을 맞이할 수 있다고 전망하는데요. 어디까지나 현재 전망이고요. 그때 가봐야 알지 않을까 싶습니다.”
-환율이 1500원 선을 넘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시는 거죠?
“일단 연말까지 상단을 1500원으로 설정했는데요. 환율이 한국 고유 문제 때문에 오르는 게 아니라 말씀하신 킹달러 현상 때문이라서요. 상단은 1500원으로 설정했지만 1500원 돌파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달러가 워낙 강세라서 다른 나라 통화도 대부분 약세이긴 한데요. S&T센터 보고서를 보니까 유독 원화가 엔화나 위안화, 유로화보다 더 약할 거라고 전망하셨더라고요. 왜 그런가요? 수출 때문일까요?
“과거에도 글로벌 경제가 하강하고 주식시장이 부진에 따지고 달러가 강세를 띠는 국면에선 원화 약세가 다른 통화보다 좀 더 강하게 나타나는 국면이 있었는데요. 한국의 경제구조 때문에 이런 일이 반복된다고 봅니다. 글로벌 경제가 좋을 땐 글로벌 무역이 늘었다가, 경제가 다운사이클에 들어가면 무역이 감소하는데요. 이 글로벌 무역 흐름에 가장 잘 따라가는 게 한국 수출이거든요. 글로벌 무역 흐름을 보려는 전 세계 투자자들이 단 하나의 지표를 볼 때 한국 수출 지표를 제일 좋아합니다.”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수출은 글로벌 경기를 보는 가장 중요한 지표! 사진은 삼성전자.
미국? 일본? 어디 투자해야 하지?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한국 수출이 중요한 지표가 되는군요. “그렇죠. 한국 수출이 꺾인다는 얘기는 전 세계 무역 흐름이 꺾인다는 얘기니까요. 외환시장에는 헤지펀드처럼 하루에도 여러 번 샀다 팔았다 하는 세력들이 있는데요. 지금처럼 달러 강세가 강한 시기에는 달러를 사고 싶으니까 ‘그럼 뭘 팔고 달러화를 사지’라고 고민을 합니다. 만약 엔화 약세가 심하면 엔화를 가장 많이 팔고 달러를 사고요. 한동안 유로화 약세가 심했을 땐 유로화를 가장 많이 팔았고요. 그런데 한국 수출이 꺾이고 무역 흐름이 확 꺾이면서 글로벌 경제가 한꺼번에 가라앉는다고 본다면 ‘달러를 살 때 이번에는 원화를 팔아야겠다’라며 거래합니다. 그래서 원화 약세가 유독 도드라지게 보이는 국면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메모리 반도체 경기가 급격하게 꺾이고 있어요. 7월부터 메모리 반도체 수출은 아예 마이너스로 돌아섰거든요. 비메모리는 주문받아서 생산하는 체제인 데 반해, 메모리반도체는 생산해놓고 파는 식이다 보니까 재고 사이클에 조금 더 취약해요. 그래서 한번 경기가 꺾이면 메모리반도체는 꺾이는 진폭이 굉장히 큽니다. 그래서 메모리 반도체 경기 하강이 한국 수출에 부담을 주면서 수출 전망이 나빠지고, 그게 원화 약세 압력으로 더해지고 있습니다.”
-환율을 보려면 메모리 반도체 경기를 유심히 살펴봐야겠군요.
“그게 얼마 전까지의 특징이고요. 최근 1~2주 동안 있었던 일은 영국 국채와 파운드화 투매 현상, 그리고 크레디트스위스 파산 가능성 얘기가 나왔었죠. 일단 우려는 좀 진정되긴 했지만,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신용시장에서 스트레스가 나타나고 있다’라는 걸 시사한다는 점이고요. 글로벌 경제에 ‘과잉 부채’가 쌓여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겁니다. 전 세계 부채 문제가 신용시장에 파열음을 내면서 안전자산인 달러화를 사게 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고요. 그래서 달러화가 독보적인 강세를 띠고 있는 게 최근 특징이죠.”
-요즘엔 주식투자자도 환율에 워낙 민감한데요. 달러가 워낙 강세니까 미국 주식은 사기가 꺼려지고, 엔화가 좀 약세니까 일본 주식을 사려는 흐름도 있더라고요.
“지금 원화 대비로 안 오른 통화가 엔화밖에 없으니까요. 제 주변에도 ‘그럼 일본에 상장된 미국 ETF를 사야겠다’며 투자하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통화가치 측면에서 본 투자 아이디어이긴 한데요.
저는 투자에 있어서는 굉장히 보수적인 관점이어서요. 개인투자자들이 너무 준비 없이 주변 환경에 이끌려서 투자하고, 그래서 미국 주식에 대한 투자가 강한 경향이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 (미국 주식이) 떨어져도 ‘그래서 미국 주식 뭐 사면 돼?’라는 질문을 아직도 많이 하시는데요.전설적인 투자자들, 존 보글이나 필립 피셔, 워런 버핏, 템플턴 경 같은 분들을 책을 보면 그분들은 일반 투자자에겐 아주 간단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일반 투자자들은 나를 따라 하지 말고 그냥 광범위한 시장 지수에 분할 매수하는 게 정답이다’라는 메시지요. 그분들은 절대 자기를 따라 하라는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전문 투자자처럼 모든 시간과 노력을 쏟기 어려운 일반 투자자들은 그냥 광범위한 시장 지수에 분할 매수로 투자하는 게 정답이라는 게 핵심이죠.
그래서 제가 제안 드리고 싶은 방법은 계좌를 두 개를 만드세요. 하나는 세제 혜택이 있는 ISA 계좌나 IRP 계좌로 만들고요. 또 다른 계좌를 만들어서. 한쪽에서는 광범위한 시장 지수에 적립식으로, 기계적으로 분할 매수하고요. 다른 계좌에서는 내가 사고 싶은 종목 사고요. 이렇게 10년, 20년쯤 지나서 과연 어느 쪽이 성과가 더 우수했는지 판단해보셨으면 해요.”
백석현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두번째 저서인 ‘환율 모르면 주식투자 절대로 하지 마라’를 펴냈다. 김재명 기자
지금은 판이 바뀌고 있다
-‘아마도 지수 전체에 투자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라는 의견이시군요. 인터뷰 전에 주신 답변에서 ‘금융위기 이후 10년간 미국 증시가 상대적으로 강했는데 이번에 패러다임 변화가 일어나서 앞으로의 10년은 또 다를 수도 있다’라고 하셨는데요. 왜 그렇게 보시나요?“저는 글로벌 증시를 볼 때 상대적인 가치를 많이 보는데요. 미국 주식이 글로벌 증시 대비 얼마나 좋은지 나쁜지를 보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연준이 유동성을 과다하게 풀면서 미국 증시가 상대적으로 좀 많이, 과도하게 상승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지금 거품이 낀 건 아니다’라는 평가가 많긴 하지만, 그래도 지난 10년 넘게 글로벌 증시 대비 미국 증시 성과가 훨씬 더 좋았단 얘기는 향후 10년은 그 반대의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보고요. 아마 1970년대가 미국 증시가 굉장히 힘들었던 시기였죠.
저는 시장의 판이 바뀌고 있다고 보고 있어서요. 시장을 섣불리 예측하고 투자하는 건 위험하다고 보고 있어요. 시장이 판이 바뀌는 이유는 굉장히 여러 가지인데요. 일단 40년 만에 처음 보는 높은 인플레이션이 나타났고요. 친환경 시대를 준비하면서 글로벌 에너지 투자가 많이 줄었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화석연료를 증산하고 싶어도 한계가 생긴 상황이고요. 그동안은 세계화로 중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생산 거점이 생겼지만, 지금은 미국의 견제로 세계화 흐름을 되돌리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잖아요. 이런 변수가 시장의 판을 바꾸고 있어서요.
단적으로 예를 들면 자산 배분 시장에선 ‘주식 60%, 채권 40%’라는 60대 40 배분 비중이 가장 일반적인 형태였는데요. 주가가 하락하면 채권가격은 올라서(채권금리 하락) 그동안은 이 공식이 들어맞았던 건데요. 올해같이 주가가 하락할 때 채권 가격도 같이 하락하고, 주가가 오를 때 채권가격이 같이 반등하는 움직임이 나와버리면 60대 40 배분 비중의 신뢰성이 많이 떨어지거든요. 지금까지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많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어요. 투자자들이 자꾸 과거 10년의 패턴만을 생각하고 시장을 바라보거나 자꾸 예측하려고 드는 건 불필요하다고 봅니다.”
“파월 연준 의장이 자꾸 볼커 시대(폴 볼커가 미국 연준 의장이던 시대, 1979년~1987년)를 얘기하잖아요. 그 이전 70년대에 아서 번스 의장 시대에 연준이 금리 올리다가 경기 침체 때문에 멈칫해서 인플레이션을 확실히 못 잡았기 때문에 결국 뒤에 볼커 의장이 더 강하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얘기하고 있는데요. 시장은 이걸 듣고도 아직 마음으로는 못 받아들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연준이 내년에 금리 인하로 돌아서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하고 있는데요. 연준 태도를 보면 내년에 금리 인하 가능성은 굉장히 낮습니다. 자꾸 70년대 얘기를 하는 걸 보면 금리를 섣불리 내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굉장히 강하다고 봅니다.”
-내년에 금리의 정점에는 다다르겠지만, 그렇게 쉽게 인하 사인이 나오진 않을 거라는 뜻인가요?
“그렇죠. 지금 에너지와 식료품을 뺀 근원 인플레이션이 6%가 넘거든요. 근원 인플레이션이 내려오고 연준의 기준금리가 올라가면서 둘이 서로 만나서 크로스가 돼야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을 멈추고 기준금리 인하를 고려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을 텐데요. 이게 과연 언제 만날 수 있을지 의문이고요.
그래도 역사적으로 보면 1971년 닉슨 대통령이 금 태환 중단을 선언한 이후 달러 강세가 총 세 번 있었는데요. 지금이 세 번째 달러 강세입니다. 2011년부터 시작해 지금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데, 1차나 2차 강세보다 더 길게 이어지고 있고요. 특히 최근에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는데요. 아무래도 주가나 금리와 다르게 달러화 가치는 상대적인 속성이 있습니다. 봉우리가 높으면 또 골짜기가 깊어질 수밖에 없고요. 무한정 상승할 수가 없기 때문에 언젠가는 꺾일 것이고요. 그래도 연준이 금리 인상을 중단한다는 컨센서스만 생기면 환율은 꺾이지 않을까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내년에 연준이 금리인하? 가능성 매우 낮음
환율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주가와 달리 무한정 오를 수는 없다. 송은석 기자
“환율이 1400원대까지 왔던 글로벌 금융위기(2008~2009년) 당시를 보면, 그때는 하루에 환율이 2~3% 상승은 물론이고 5% 상승하는 날도 있었거든요. 올해는 아직까진 가장 많이 상승한 날도 (상승률이) 1%대였습니다. 환율 상승 움직임만 보면 글로벌 금융위기보다는 2000년 초반 IT버블 붕괴 당시와 더 가깝다고 보고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는 금융 규제가 느슨했던 시기라서요. 어느 투자은행이 과연 얼마나 물린 건지가 제대로 파악이 안 되다 보니 ‘도대체 그다음 타자는 누구냐’라는 불확실성이 굉장히 컸거든요. 지금은 은행 규제가 매우 강해졌기 때문에 일단 적어도 은행이 무너지지는 않을 거란 기대감이 있고요.다만 그동안 자본시장에서 부채가 너무 많이 증가했기 때문에, 은행이 무너지지 않아도 다른 쪽에서 신용사건 관련된 파열음이 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에 상당한 후폭풍이 몰아칠 수는 있다는 불안감은 있죠.”
-개인적으로도 외국환 아니면 외환 관련 자산에 투자하시는 게 있나요?
“저는 환율에는 투자 안 합니다. 장기적으로 환율은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에 올라봤자 기대수익이 크지 않고요. 10년을 바라보고 투자한다면 당연히 많이 올라갈 수 있는 시장 지수나 주식에 투자하지, 통화 자체에 투자하진 않아요. 저는 시장지수에 투자하는 입장에서 국가별로는 투자하고 있습니다.”
-어느 국가인지는 얘기 안 해주세요?
“대표적인 국가들, 미국과 중국에 투자해요. 중국이 좋지 않지만 이러다가 망한다고는 보지 않거든요. 미국의 견제 때문에 속도가 늦춰질 수 있을지언정 장기적으로 중국이 계속 강해질 거라는 믿음은 변함이 없고요. 그래서 시장지수에 자동 적립식으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딥다이브 뉴스레터 구독자들에게 한마디 하신다면?
“투자는 결국 시장과의 싸움이 아니라 나와의 싸움이에요. 시장과 싸울 생각을 하면 안 되고, 나의 비합리적인 결정을 줄여야죠. 그러려면 감정에 휘둘리지 말아야 하고요. 따라서 시장 가격 움직임에 휘둘리지 말고, 무심하게 광범위한 시장 지수에 분할 매수하시는 게 이 어려운 시기를 버티는 최선인 것 같습니다.” By. 딥다이브
백석현 이코노미스트님이 들려준 환율 전망, 어떠셨나요? 정신이 번쩍 드는 동시에(판이 바뀌다니!) 멘탈을 가다듬게 되는데요(오늘은 주식계좌를 확인하지 말자).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
메모리 반도체 경기가 꺾이면 원화는 상대적으로 약해집니다. 당분간은 환율 오름세가 이어질 겁니다. 내년 상반기쯤 미 연준의 금리 인상이 끝나면 그때 환율이 꺾일 겁니다. 하지만 연준이 내년에 금리 인하에 나설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판이 바뀌고 있습니다. 지난 10여 년은 미국증시가 상대적으로 강세였지만, 앞으로 10년은 다를 수 있습니다. 개인 투자자는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광범위한 시장지수에 적립식으로 분할 매수하는 투자법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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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