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훈의 政說] ‘尹 대척점’ 캐릭터 구축… 비윤 당대표 등장 시 징계 재심 가능성↑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윤리위)가 이준석 전 대표에게 추가 징계를 단행했다. 당원권 정지 1년 연장이다. 이 전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과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으로부터 버림받지 않았다면 당대표 임기를 채우고 총선 공천도 무난하게 받았을 것이다. ‘청년 장관’으로 입각할 기회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일견 탄탄대로다. 무관에 백의종군해야 할 처지로 내몰린 지금은 외견상 초라해 보일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9월 28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국민의힘 당헌 효력 정지 가처분신청 사건 심문을 마친 뒤 청사를 나서며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동아DB]
친윤 대 비윤 6 대 4
윤 대통령과 윤핵관의 푸대접은 이어질 전망이다. 윤 대통령이 이 전 대표를 내각으로 부르지 않을 것이고, 윤핵관이 차기 총선에서 공천을 줄 리도 만무하다. 이 전 대표의 겨울이 길어질 수 있지만 최근 흐름은 결코 불리해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하락 후 장기간 정체 상태다. 차기 전당대회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국민의힘 차기 지도부의 주된 역할은 2024년 총선 승리다. 윤 대통령과 윤핵관은 윤핵관 지도부를 구성해 ‘윤석열 마케팅’으로 이기겠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을 테다.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높아야 성사 가능한 시나리오다. 최소한 윤 대통령 지지율이 상승 궤도에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라도 공유돼야 한다. 지지율 회복이 일어나지 않으면 윤 대통령과 윤핵관의 국민의힘에 대한 통제력은 이듬해 총선까지 ‘6개월 천하’로 끝날 수 있다.
구도가 급변할 여지도 있다. 윤핵관 지도부의 윤석열 마케팅으로는 차기 총선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하는 경우다.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 정체가 차기 전당대회 때까지 이어지면 불안감이 커질 것이다. 혹여 지지율이 추가 하락하는 국면이 펼쳐진다면 친윤계 의원 중에서도 이탈자가 발생하고, 당심도 크게 요동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 전 대표가 비윤계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원한다면 경선 구도 변화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이 전 대표는 책임당원이 20만 명이었을 때 대표 경선에서 승리했다. 당심이 보수 핵심 지지층 위주로 짜였을 때 당대표가 됐다는 의미다. 이 전 대표 당선 후 책임당원이 80만 명까지 급속히 늘었다 지금은 60만 명 정도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진다. 새로 가입한 책임당원 모두가 이 전 대표를 지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선 국면에서 윤 대통령을 지지하고자 입당한 이도 적잖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난 전당대회 때와 비교하면 이 전 대표를 지지하는 이들의 비율이 큰 폭으로 증가했을 것으로 봐야 한다.
차기 전당대회에서 이 전 대표가 미는 후보가 대표로 당선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장 먼저 윤리위가 이 전 대표 징계에 대한 재심 절차에 들어갈 것이다. 당원권 정지 1년 6개월이라는 징계가 과도하다며 기간을 줄여주는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크다. 연장선에서 차기 총선 공천도 보장해줄 확률이 높다. 대선 및 총선에 대한 기여도도 재평가받게 될 것이다. 윤 대통령이나 윤핵관의 눈에 들려고 애쓸 필요 없이 사실상 자력으로 구제받는 길이다.
국민의힘 이준석 당시 대표(오른쪽)가 7월 4일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했다. [동아DB]
“당 떠나지 말고 차라리 접수하자”
앞선 상황이 아니더라도 이 전 대표에게 현 상황은 나쁘지 않다. 일련의 갈등을 겪는 과정에서 윤 대통령의 대척점에 서 있는 정치인으로 이미지를 확실하게 구축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높으면 최악의 상황일지 모르지만 현실은 반대다. 권불십년은커녕 ‘권불오년’이라는 말이 더 알맞은 요즘이다. 사회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정권 재창출도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대통령과 같은 정당 출신이라도 차별화를 해야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 이 점에서 이 전 대표는 범여권 대권 주자 가운데 가장 앞서 있다.“어느 누구도 탈당하지 말고, 각자 위치에서 勿令妄動 靜重如山(물령망동 정중여산).” 이 전 대표는 10월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순신 장군의 말까지 인용하며 지지자들에게 탈당 금지 권고를 했다. 본인을 지지하는 책임당원들에게 “당을 떠나지 말고 차라리 접수하자”고 호소한 것이다. 이 전 대표 입장에서는 책임당원들의 일치단결된 행동이 필요할 것이다. 이 전 대표는 그들의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당대표 시절 정치력과 관련해 긍정평가와 부정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 그의 정치력이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60호에 실렸습니다]
이종훈 정치경영컨설팅 대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