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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모호하게”…화법 변화 예고한 ‘친절한 창용씨’

입력 | 2022-10-17 03:00:00

“보다 직설적이지 않고 다소 모호하게 이야기… 중앙은행이 배워야 할 미덕”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기준금리 인상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아마 여러분께서는 제가 전보다는 직설적이지 않고 다소 모호하게 이야기한다는 점을 알게 되실 것인데, 이는 중앙은행원으로서 배워야 하는 미덕이기도 합니다.”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합동 연차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을 방문 중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5일(현지 시간) 워싱턴 소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에서 ‘글로벌 통화정책 긴축 강화와 한국의 통화정책’을 주제로 강연하며 이같이 말했다. 특유의 거침없는 화법과 명확한 포워드 가이던스(사전예고지침)로 시장과 교감해온 이 총재의 소통 방식이 바뀔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이 총재는 7월 사상 첫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결정하면서 “당분간 금리를 0.25%포인트씩 점진적으로 올리겠다”고 했다. 향후 금리 인상 폭과 속도를 제시한 이례적인 포워드 가이던스에 ‘친절한 창용 씨’란 별명까지 붙었다. 그는 당시 “시장과 좀 더 투명하게 소통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총재는 강연에서 “9월 들어 원화 가치가 급격히 하락하자, 7월에 금리 인상 폭을 0.25%포인트로 미리 제시함으로써 환율 절하를 심화시켰다는 비난이 거세졌다”고 했다. 이어 “7∼8월 포워드 가이던스를 제시할 때 9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결정을 보고 다시 고려할 것임을 조건부로 이야기했다”며 “사람들은 지난 베이스라인 시나리오를 조건부로 받아들이기보다 서약이나 약속으로 여기는 것 같다”고 불편한 심정을 에둘러 표현했다.

결국 한은은 12일 기준금리를 2.5%에서 3.0%로 올리는 역대 두 번째 ‘빅스텝’을 단행했다. 그의 0.25%포인트씩 점진적 인상은 폐기된 셈이다.

이 총재는 향후 소통 방식의 변화도 예고했다. 그는 “미래 금리 경로에 대해서는 가급적 언급을 피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왔던 오랜 방식에서 벗어나기에는 현실적으로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여러 가지 애로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또 “앞으로 대외 요인을 통제하기 어려운 소규모 개방경제의 특성을 감안해 어느 정도, 어느 속도로 이러한 관행을 변화시켜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변화는 어려운 것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총재는 12일 두 번째 빅스텝을 단행한 뒤 기자간담회에서 11월 기준금리 인상 폭에 대한 질문에 “11월 연준의 결정 등을 일단 보겠다”며 철저히 말을 아꼈다. 그의 직설적 화법이 예측 가능성을 높여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평가하는 이들로부터 “아쉽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