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세계은행 연차총회서 논쟁 각국, 외화 아끼려 수입제한 등 조치 FT “세계를 채무불이행국 만들어”…이창용 “美금리인상 파급효과 주목” 바이든 “우린 강달러 걱정 안해”…IMF “통화보호 위해 외환낭비 말라”
“매일 약이 없다고 말하는 게 괴롭습니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아흐메드 알리 씨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그나마 여력이 되는 사람들은 약을 구하러 터키나 영국까지 간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집트 당국은 달러 가치의 초강세를 가리키는 ‘킹 달러’ 현상에 외화를 아끼기 위해 수입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이에 필수 의약품을 비롯해 주식인 빵에 파스타까지 수입품이 동난 것이다.
이집트는 대외채무가 1580억 달러(약 228조 원)에 달하는 채무국이다. 올해 들어 달러로 환산한 ‘이집트 파운드’ 가치는 20.2% 급락했다. 달러 기준으로 갚아야 할 빚이 20% 늘어난 셈이다.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인한 강달러 현상과 각국 화폐 가치 하락이 각국의 자본 유출 우려 등 경기 침체 위기로 이어져 ‘미국이 경기 침체를 수출한다’는 비판까지 거세게 일고 있지만 미국은 “미국 인플레이션 억제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강달러로 자국의 수출에 악영향이 있기는 하지만 고물가만큼 걱정할 게 아니기 때문에 공격적 금리 인상을 계속하겠다는 자국 우선주의 태도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15일 강달러 현상에 대한 우려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세계 경제는 걱정된다”고 답했다.
○ “연준이 전 세계를 그리스로 만든다”
개발도상국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직격탄을 맞은 유럽도 에너지 위기에 강달러를 감내해야 하는 처지다. 영국은 국채가격 폭락 속에 연기금 파산 우려까지 몰렸다. 이에 최근 조지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 고위 대표는 EU 대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올리면 모두가 자국 화폐가치가 떨어질까 같이 금리를 올린다. 결국 이것이 경기 침체를 가져올 것”이라고 비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 재정 위기 때 독일이 그랬던 것처럼 미국이 경기 침체를 수출하고 있다”며 “나머지 세계를 (채무 불이행을 선언한) 그리스로 만들려는 것”이라고 평했다.
한국도 고환율 속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무역적자가 심화되는 등 경제에 적신호가 켜졌다. IMF 연차총회 참석차 미국 수도 워싱턴을 찾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5일 기자들에게 “올해 연차총회의 주요 주제 중 하나가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스필오버(파급효과)였다”며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여러 미팅에서 금리 인상 정책이 미치는 여러 스필오버도 유심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 바이든 “걱정 안 해”, 옐런 “집안 일이 먼저”
9월 미국 소비자물가가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는 미국은 일단 미국 인플레이션 억제가 우선순위라는 입장이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14일(현지 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및 세계은행 연차총회 연설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는 이날 미국의 금리 인상 기조와 이에 따른 달러 강세 현상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AP 뉴시스
결국 세계 각국이 살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강달러 문제와 관련해 각국 중앙은행에 “통화 보호를 위해 외환을 낭비하지 말라”며 “계속해서 통화가치가 하락하면 결국 미래에 더욱 어려운 위기에 처한다”고 경고했다. 이 총재는 한국에서 대안으로 제기되는 한미 통화스와프에 대해 “통화스와프는 미 연준이 결정한다. 스와프가 기본적으로 심리적 안정을 가져오는 데 도움이 된다”면서도 달러 강세가 계속될 때 통화스와프가 환율 절하를 완전히 막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