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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트러스표 감세정책’ 사실상 백지화… 총리 조기퇴진 전망 솔솔

입력 | 2022-10-18 03:00:00

신임 재무 “감세안 대부분 되돌릴것”… 소득세 기본세율 인하 계획 취소
에너지料 상한 동결 내년 재검토… 파운드화 가치 오르고 증시 상승
트러스, 취임 6주만에 퇴진 압박… 집권 보수당, 정권 교체 위기감
의원 100명 ‘트러스 불신임’ 추진



대표 정책인 감세안을 발표한 지 열흘 만에 철회한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 런던=AP 뉴시스


지난달 취임 직후 대규모 감세 정책을 발표해 금융시장을 혼란에 빠뜨렸다가 열흘 만에 일부를 전격 철회한 영국 리즈 트러스 내각이 당초 발표했던 감세안 대부분을 뒤집겠다고 선언했다. 17일 제러미 헌트 신임 재무부 장관은 예산안 일부를 예정된 31일보다 2주 앞당겨 발표하면서 ‘트러스표’ 감세 정책을 사실상 백지화했다. 이 발표 뒤 영국 증시는 상승하고 국채 금리는 떨어지면서 안정을 찾았다. 하지만 트러스 총리가 내각과 집권 보수당의 신뢰를 잃고 조기 퇴진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짙어지고 있다.
○ 신임 재무장관, 트러스표 감세 정책 백지화

헌트 장관은 17일 영상으로 발표한 성명에서 트러스 총리의 감세안에 대해 “거의 대부분 되돌리겠다(reverse)”고 밝혔다. 소득세 기본세율을 20%에서 19%로 인하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에너지 요금 상한 동결은 내년 4월까지만 실시한 뒤 이후 시행 여부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배당세율 인하 계획과 관광객을 위한 부가가치세 환급 및 동결 정책도 폐지하겠다고 했다. 영국 BBC는 “영국 경제 역사상 가장 큰 예산을 취소하는 유턴”이라고 평가했다.

헌트 장관은 국가 부채가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감세로 재원이 줄면 재정 건전성이 악화될 것으로 보고 기존에 발표된 법인세 인하 취소 외에도 다른 감세 정책을 거의 모두 철회한 것으로 풀이된다.

헌트 장관은 기존 발표대로 감세안을 시행할 경우 세금 감면액이 연 320억 파운드(약 52조 원)로 추산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는 경제 안정에 책임이 있으며 공공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확신을 줘야 한다”며 “감세를 위해 나랏빚을 지는 건 옳지 않다”고 했다.

헌트 장관은 트러스 내각의 감세안 철회 발표에도 시장이 안정을 찾지 못하자 예정보다 앞서서 구체적인 감세 정책 변경 사항을 공개한 것이다. 전체 예산안과 예산책임처(OBR)의 중기 재정 전망은 예정대로 31일 발표된다.

헌트 장관의 발표에 시장은 호응했다. 발표 직후 파운드화의 달러화 대비 환율은 전일 대비 1% 넘게 올라 한때 1.13달러를 나타냈다. 영국 증시 FTSE100 지수도 장 초반 상승세를 이어갔다. 영국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3.9%대로 내려갔다. 국채 수익률이 오르면 일반 대출 금리가 오를 수 있다.
○ “트러스의 시간은 끝났다”
하지만 본격적인 고비는 지금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영국 타블로이드지 데일리메일은 보수당 의원들이 이번 주 트러스 총리 축출을 시도할 것이라고 16일 보도했다.

이 매체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100명이 넘는 보수당 하원의원이 보수당 경선을 주관하는 ‘1922 위원회’의 그레이엄 브레이디 위원장에게 “트러스의 시간은 끝났다”며 트러스 총리에 대한 불신임투표를 요청하는 서한을 제출하려 한다고 전했다. 현재 보수당 하원 의석은 356석이다. 이 의원들은 총리 불신임 투표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당규 변경을 촉구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수당 동료 의원들까지 트러스 총리를 밀어내려는 것은 최근 민심이 크게 악화돼 이를 방치하다간 노동당에 정권을 내줄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영국 여론조사업체 오피니엄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시점에서 총선이 실시될 경우 노동당은 하원의석 중 411석을 얻는 압승으로 12년 만에 정권을 탈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수당은 현재 의석 중 219석을 잃어 137석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가디언은 보수당 경선에서 대부분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을 지지했던 보수당 중진 의원들이 17일 멜 스트라이드 전 재무장관이 주재하는 만찬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해 트러스 총리 퇴진 절차가 구체화될지 주목된다. 벌써 후임으로 경선 최종 경쟁자였던 수낵 전 장관, 경선 3위였던 페니 모돈트 국제통상부 장관, 벤 월리스 국방장관 등이 거론된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