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 정치부 차장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둘러싼 사법리스크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이재명을 싫어하는 ‘문빠’들 사이에 전설처럼 등판하는 사진이 있다. 2013년 11월 6일 지지자들의 ‘안개꽃 응원’을 받으며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던 문재인 전 대통령(당시 민주당 의원)의 모습이다.
2012년 대선에서 패배한 문 전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폐기 의혹이 이어지자 2013년 10월 검찰을 향해 “죄 없는 실무자들을 괴롭히지 말고 나를 소환하라”고 정면승부를 선언했다. 그는 당시 낸 보도자료에서 “국민이 원하는 건 진실 규명을 끝내고 소모적 논란과 정쟁에서 벗어나 정치가 민생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한 달 뒤 실제 검찰에 참고인으로 소환된 그는 입가에 살짝 미소까지 띤 채 여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해 안개꽃을 들고 나온 150여 명의 지지자들로부터 환호를 받으며 검찰로 들어섰다. 지금도 열혈 ‘문빠’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는 명장면 중 하나다. 한 문재인 지지자는 “켕기는 게 없는 사람한테선 저런 결기가 느껴질 수밖에 없다”며 “(이재명도) 검찰, 경찰 수사에 대리인을 보내지 말고 저렇게 당당하게 임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감사원법 제50조에 따르면 감사원은 감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필요하면 전직 대통령에게도 감사원장 명의의 질문서를 보낼 수 있다. 1993년 노태우 전 대통령과 1998년 김영삼 전 대통령은 각각 율곡사업 의혹과 외환위기 특별감사에 대해 답변서를 냈다. 감사원은 2017년과 2018년엔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도 각각 질문서를 보내려 했지만 이들이 수령을 거부해 못 보냈다고 한다. 문 전 대통령은 차마 ‘조용히’ 거부하긴 싫었는지 이를 굳이 정치 이슈로 키웠다. 덕분에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열린 첫 국회 국정감사는 첫날부터 신구 권력이 정면충돌하는 볼썽사나운 ‘정쟁 국감’이 돼버렸다. 그가 9년 전 보도자료에 적었던 ‘진실 규명’과 ‘민생을 위한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지난 8월 전당대회에서 승리하고 다음 날 자신을 찾아온 이 대표에게 문 전 대통령은 “나와 이 대표를 지지하는 그룹이 같다”며 이재명의 ‘명’과 문재인의 ‘문’을 딴 ‘명문’ 정당을 만들어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의 말마따나 두 사람이 어느덧 서로를 똑 닮아가고 있는 듯하다.
김지현 정치부 차장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