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이르는 길은 재능이 아니라 역경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을 때 열리죠.”
독일 출신의 호르니스트 펠릭스 클리저(31)는 태어날 때부터 양팔이 없었다. 그는 왼발을 이용해 호른의 밸브를 조작하고, 오른손이 해야 할 일은 모두 입술이 대신한다. 보통 호르니스트들은 왼손으로 음정을 조절하는 밸브를 누르고, 오른손은 악기의 개구부에 넣어 음색에 변화를 주고 볼륨의 미세한 변화를 조절한다.
‘다른 호르니스트들과 달리 발가락으로 연주하는 호른이 어렵지 않냐’는 물음에 클리저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은 긴 손가락으로 어떻게 그렇게 가는 연필을 잡지요? 사실 남들처럼 손으로 연주해 본 적이 없어서 어떤 것이 더 어려운지 모르겠어요.”
현재 영국 본머스 심포니 상주 음악가로 활약 중인 클리저가 오는 11월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내한 공연한다. 11월5일에는 울산현대예술관 대극장을 찾는다.
이번 공연은 호르니스트들이 즐겨 연주하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작곡가들의 작품으로 꾸몄다. 슈만의 ‘아다지오와 알레그로’, 슈트라우스의 ‘호른과 피아노를 위한 안단테’, 베토벤의 ‘호른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등을 연주한다. 피아니스트 조재혁이 협연한다.
클리저는 5살 때 우연히 듣게 된 호른의 음색에 매료돼 무작정 부모님을 졸라 호른을 배우기 시작했다. 독일 중부의 작은 도시인 괴팅겐에는 호른을 가르쳐줄 선생님이 많지 않았고, 그의 나이도 너무 어렸지만 부모는 그 뜻을 꺾지 못했다. 13살이던 2004년 하노버 예술대 예비학생이 됐고, 3년 후 정식 입학했다. 2008년 독일 국립 유스 오케스트라에 입단했고 2011년까지 활동했다.
2013년 발표한 첫 앨범 ‘꿈, 호른과 피아노를 위한 낭만음악’으로 2014년 독일의 가장 저명한 음악상인 에코 클래식상에서 ‘올해의 영 아티스트상’을 받았다. 그해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 ‘각주: 세상을 정복한 팔 없는 나팔수’를 출간했고, 독일지휘자협회 음악상도 거머쥐었다. 2016년엔 독일 뤼벡의 유서 깊은 페스티벌인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뮤직 페스티벌에서 ‘레너드 번스타인상’을 수상했다.
또 OHMI(One-Handed Musical Instrument Trust)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자신처럼 양팔을 쓸 수 없는 음악가를 위해 새롭게 고안되거나 개조되는 악기를 제작 지원하는데 힘을 보태기도 했다. 한국엔 2015년 금호아트홀 연세 개관 음악제를 위해 처음 내한했고, 2018-2019년 제주국제관악제에 참여했다. 그는 2018년부터 독일 뮌스터 국립음대에서 호른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