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침공 직후 조국을 지키기 위해 자원 입대한 우크라이나의 테니스스타 세르히 스타호우스키. 사진 출처 세르히 스타호우스키 인스타그램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3월 미국 CNN 등 주요 외신은 우크라이나 출신의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 세르히 스타호우스키(36)의 참전 사연을 앞다퉈 소개했다.
2013년 윔블던 대회에서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를 꺾기도 한 그는 우크라이나로 귀국해 라켓 대신 총을 들고 수도 키이우 방어에 앞장섰다. 아내와 어린 세 자녀는 헝가리에 남겨둔 채였다. 흙투성이 군복 차림의 그는 화상 인터뷰에서 “힘든 결정이었지만 집에 머물면 죄책감이 들 것 같았다”고 담담히 말했다. 조국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 스포츠 스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세계 곳곳에서 격려와 응원이 쇄도했다. 우크라이나군의 사기와 국민들의 항전 의지를 북돋우는 기폭제가 됐음은 물론이다.
사회 지도층과 유명 인사의 솔선수범이 국민 결집과 국난 극복의 원동력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반대로 그들이 국민으로서 해야 할 책임을 도외시하면 국가 운영에 가장 중요한 공정의 원칙이 훼손되고 사회적 분열과 갈등의 골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방탄소년단(BTS)의 병역특례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첨예한 것도 노블레스 오블리주 및 공정의 원칙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BTS의 병역특례는 최대한 신중하게 검토돼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BTS의 병역면제로 초래될 형평성 논란과 사회적 갈등을 비롯한 부작용이 국가적 실익보다 더 클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여야 의원이 발의한 국위선양 대중문화예술인의 대체복무를 허용하는 병역법 개정안을 두고서 ‘BTS 병역면제법’이라는 날선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국위를 선양한 보상이 꼭 병역혜택이어야 하느냐는 반론도 적지 않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개병제를 근간으로 한 병역의무는 신성한 국민의 책무이고, 그 핵심원칙이 ‘공정’이라는 점에서 예외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정성에 민감한 MZ세대(20, 30대)에서 BTS의 병역특례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게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 차례 공연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세계적 명성까지 얻은 아이돌 스타가 군 면제 혜택까지 받는다면 청년층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BTS가 17일 순서에 따라 멤버들의 군 입대 계획을 발표한 것도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와 여론을 두루 고려한 결정이라고 본다.
애당초 정부의 오락가락하는 태도가 소모적 논쟁의 주범이라는 지적이 많다. 2019년 문재인 정부는 1년여간 관계부처가 참여한 태스크포스(TF) 논의를 거쳐 BTS 등 대중문화예술인을 대체복무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기로 결정한 바 있다. 대중가수의 특례를 인정하면 다른 대중문화 분야뿐 아니라 e스포츠 등 각계로 확대 요구가 빗발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후 3년 만에 정치권에서 또다시 BTS 특례 논쟁에 불을 지피고 정부가 고심하는 태도를 보인 것은 병역정책의 신뢰성을 스스로 흠집 내는 자충수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병역자원 급감 등 현실적 여건도 녹록지 않다. 20세 남자 인구는 2020년 33만 명에서 2025년 23만 명으로 줄어든 뒤 2040년에는 14만 명까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군대 갈 젊은이가 급감하자 과거 보충역이나 군 면제 대상자까지도 현역으로 입영하는 상황에서 병역특례 확대는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힘들다. 국위를 선양한 스포츠 스타나 대중문화예술인은 전성기가 지난 늦은 나이에 입대해 병역의무를 이행토록 하거나 군 복무 중에도 공연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대안을 모색할 필요도 있다. 엄중한 안보 상황과 국민통합 차원에서도 ‘열외’와 ‘특혜’가 당연시되는 병역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