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세 여성 ‘슬아’는 생활형 작가이자 “출판계는 불황”이라는 말을 수시로 듣는 작은 출판사 대표다. 매일 출판사 업무, 글쓰기 강의, 언론 인터뷰에 쫓기면서 고군분투한다. 그런 슬아가 어느 날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엄마 아빠를 출판사 직원으로 채용한다. 집안의 경제권을 쥔 슬아는 좌충우돌 여러 사건을 마주하게 되는데…. 가부장이 아닌 ‘가녀장’(家女長) 슬아는 과연 가장의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까.
7일 출간된 장편소설 ‘가녀장의 시대’(이야기장수)는 에세이인지 소설인지 그 경계가 모호하다. 이 작품을 쓴 이는 에세이 작가이자 헤엄 출판사 대표인 이슬아(30)다. 가족들과 함께 일했던 경험을 기반으로 처음 소설을 썼는데 반응이 폭발적이다. 온라인 서점 알라딘 10월 둘째 주 종합 순위 5위를 차지했고, 출간 열흘 만에 1만 부가 팔렸다. 이연실 이야기장수 대표는 “한 달 1만 원에 매일 글을 받아보는 에세이 시리즈 ‘일간 이슬아’로 팬덤을 형성한 이슬아 작가에게 20, 30대 여성들이 지지를 보내고 있다”며 “비유나 수사 없는 간결한 문체, 현학적이지 않고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쓰는 에세이 작가의 장점이 독자들을 사로잡았다”고 말했다.
최근 에세이나 교양서로 화제를 끈 작가들이 펴낸 소설이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이들은 신춘문예 등 정식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았음에도 유명 소설가들 못지않은 팬덤을 바탕으로 서점가를 휩쓸고 있다.
7일 출간된 단편소설집 ‘언러키 스타트업’(민음사)은 에세이 작가인 정지음이 펴낸 첫 소설집이다. 정 작가는 지난해 6월 자신의 정신질환을 고백한 에세이 ‘젊은 ADHD의 슬픔’(민음사) 펴냈는데 이 책이 2만 부 팔려 ‘핫한’ 작가로 떠올랐다. 올 2월 에세이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빅피시)까지 단 2권의 에세이를 출판한 신인이지만 ‘언러키…’는 출간 직후 각종 서점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언러키…’ 역시 에세이 작가의 특성이 짙게 묻어난 작품. 박혜진 민음사 문학2팀장은 “작가가 자신이 겪은 황당한 에피소드를 블로그에 에세이로 써뒀던 것을 소설로 개작해 출판했다”며 “진짜 현실에서 벌어질법한 사건이 담겨서인지 독자들에게 와 닿는 것 같다”고 했다.
2014년부터 2020년까지 펴낸 인문교양서 시리즈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지대넓얕)이 300만 부 팔려 화제에 오른 작가 채사장은 지난해 12월 자신의 첫 장편소설 ‘소마’(웨일북)를 펴냈다. ‘소마’에 대해 문학적인 평가는 엇갈리지만, 가독성이 높고 일상적인 언어로 쓰인 점이 대중을 사로잡았다. 올 5월 리커버북이 출간됐을 정도로 독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