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부터 6년 동안 미국, 캐나다, 벨기에, 스위스 등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존엄사를 선택한 이들의 마지막을 지켜본 캐나다 출신 다큐멘터리 제작자 케이티 엥겔하트. 최근 존엄사 현장을 담은 신간 ‘죽음의 격’(은행나무)를 올해 8월 17일 국내에 출간한 그는 동아일보와의 e메일 서면 인터뷰에서 “2017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브래드쇼의 마지막 순간을 지금까지도 잊지 못 한다“고 답했다.
“죽음이 예정돼 있었기에 그의 자녀들은 직장을 쉬고 그와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순간을 알고 있었기에 그들은 생의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분명 ‘멋진 죽음’이었습니다.”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올 6월 국회에서 ‘존엄조력사법’이 최초로 발의됐다. A 씨처럼 치료가 어려운 말기 환자가 의사에게 요청하면 약물 처방을 받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법적 절차가 마련될 수 있는 첫 단추가 꿰어진 셈.
1994년 미국 오리건주에서 세계 최초로 존엄조력사법이 통과된 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스위스 등 국가를 살펴본 케이티 엥겔하트는 “우리가 존엄조력사법을 논의할 때 가장 중시해야 하는 가치는 종교적이거나 윤리적인 잣대가 아니라 실제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와 가족들이 느낄 고통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위해 힘써온 한 활동가가 제게 해준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삶은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지만, 그것을 버릴 수 없다면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죠.”
‘죽음의 격’ 저자 케이티 엥겔하트. 은행나무 제공
저자는 책 속에 ‘지하 안락사 조직’의 실태도 담았다. 그는 “맨해튼에 거주하는 한 은퇴한 변호사는 안락사에 이를 수 있는 약물을 사기 위해 멕시코로 안락사 약물 구매 여행을 떠났다. 전 세계 곳곳에는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약물을 대리해서 구매하거나 대신 투약해주는 지하 안락사 조직이 존재했다”고 설명했다. 존엄조력사법이 합법화되지 않는다면 한국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경고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