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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예술적 위상 높인 자연미술, 미술운동으로 확대시킬 것”

입력 | 2022-10-19 03:00:00

고승현 공주비엔날레 운영위원장 인터뷰



공주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운영위원장 고승현 작가가 자신의 연작 ‘가야금’의 제작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살아있는 나무 대신 공사장 등에 버려진 나무를 작품 재료로 활용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봄철, 충남 공주의 계룡산에 신록이 차올랐다. 풀숲에 초록이 물결처럼 흘렀다. 그는 풀숲에 눕고 싶었다. 하지만 초록의 흐름을 깨고 싶지 않았다. 초록색 옷으로 갈아입었다. 얼굴에는 초록색 풀잎을 그려 넣었다. 풀숲에 눕는 순간 그는 풀숲의 일부가 됐다.

자연미술의 개척자인 고승현 공주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공주비엔날레) 운영위원장(66)의 1989년 작품 ‘풀잎 드로잉’은 이렇게 완성됐다.

자연미술은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추구한다. 충남 공주시 연미산자연미술공원 일원에서 8월 27일 개막한 2022 공주비엔날레 ‘또, 다시야생’도 그런 고민을 담았다. 공주시와 한국자연미술가협회(야투) 주최로 내달 말까지 열리는 공주비엔날레에는 이탈리아와 우크라이나, 미국 등 10개국 자연미술 작품 23점이 출품됐다. 인근 늘봄정원의 자연미술영상전에서는 ‘불가능한 나무 만들기’ 등 24개국 작가의 57개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공주비엔날레는 1991년 국제자연미술전으로 시작해 2004년 비엔날레로 승격되면서 세계 최대의 자연미술 축제로 발돋움했다.

자연미술은 서양의 예술일 것이라는 오해와는 달리 41년 전인 1981년 한국에서, 그것도 공주에서 태동해 독일, 헝가리 등 전 세계로 번지면서 새로운 예술 장르로 발전했다.

‘야투’ 창립 멤버로 자연미술의 선구자인 고 작가로부터 40여 년의 자연미술 외길 인생에 대해 들어봤다.

―자연미술은 어떻게 태동했나.

“한국화로 석사학위까지 마친 뒤 어떤 예술을 추구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1981년 동료들과 만든 야외현장미술연구회는 그런 고민의 산물이었다. 우리는 예술의 근원인 원시 예술을 탐구했고, 그 환경이 자연이라는 데 주목했다. 가르쳐줄 스승도 없이 나아갔다.”

―자연미술은 뭔가.

“자연에 개입하되 자연의 형상을 해치지 않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되기’, ‘잇기’, ‘숨쉬기’ 등 3가지 키워드로 말할 수 있다. 자연에 몸을 던져 자연이 되고 자연의 안과 밖을 이어 교감하며 자연에서 안식하고 숨 쉰다.”

―일종의 퍼포먼스인가.

“자연미술의 구현 방법은 장소성을 가진 설치미술과 그것과 연관된 퍼포먼스다. 강, 모래, 흐르는 강물, 곤충의 움직임, 바람, 태양 등 자연의 모든 것들이 재료다.”

―자연미술이 이제 세계적인 담론으로 발전했다.

“1983년 공주에서 진행한 창작 워크숍에서 ‘자연미술’이란 용어를 처음 제안했다. 그 이후 야투는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공주 원골 국제 레지던시, 글로벌 노마딕 아트 프로젝트 등을 창설하고 운영하면서 자연미술 담론을 확산했다. 각국 작가들과 세계 각 지역을 유랑하면서 창작한다.”

―가야금 연작으로 주목받고 있다.

“2002년부터 몰두하고 있는 가야금 연작을 통해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가야금 재료는 살아있는 나무가 아닌 건설현장에서 잘렸거나 태풍에 전도된 나무다. 살아있는 나무의 생명을 박탈하지 않고 죽은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울리고 사라지는 가야금 소리는 자연의 생성과 소멸을 말한다.”

―비엔날레가 높은 공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자연미술 작품과 작업 내용이 초중고교 10종 미술교과서에 수록돼 교육적 효과를 입증했다. 공주비엔날레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전국 비엔날레 평가에서 부산비엔날레와 더불어 최고 등급인 ‘2등급’을 차지했다. 국가기록원은 문화예술 분야에서 보존 가치가 높은 자료로 지정했고, 공주시는 올해 미래유산으로 선정했다.”

―공주의 문화 예술적 위상을 어떻게 높였나.

“비엔날레가 횟수를 거듭하면서 총 8km에 달하는 생활공원에 140여 개 작품이 상설 전시돼 자연미술의 메카로 부상했다. 자연미술공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동안 공주에 가장 많은 관광객을 이끌었다.”

―앞으로 자연미술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생각인가.

“지구 생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미술운동을 추진하는 작업을 병행하려 한다. 지구 환경과 기후위기를 다루는 다양한 전문가 집단과의 융합 프로젝트로 새로운 지속 가능성을 모색하겠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