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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 고환율 고유가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 [광화문에서/유재동]

입력 | 2022-10-19 03:00:00

유재동 경제부 차장


얼마 전 뉴욕타임스(NYT)가 한국의 야간 골프 열풍을 기사로 다뤘다. NYT는 “한국인들은 자정이 가까운 시간, 심지어 오전 1시까지도 골프를 친다”면서 대낮처럼 환하게 불빛을 켜고 즐긴다는 뜻으로 ‘백야(白夜) 골프’라고 이름 지었다. 미국에서도 ‘트와일라잇 티타임’이라고 해서 오후 늦게부터 해 질 녘까지 칠 수 있는 옵션이 있지만 한국처럼 달빛 아래에서 라운딩을 이어 나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우리나라의 명물로 자리 잡은 밤 골프 문화에 최근 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잇달아 한마디씩 쓴소리를 했다. 에너지 절약이 절실한 시점에 적절치 않은 모습이라는 것이다.

야간 골프 자제령은 공공기관 온도 조절, 난방시간 단축 등과 함께 에너지 부족에 시달릴 때마다 정부가 꺼내 드는 ‘단골 카드’다. 정부는 “지금은 오일쇼크에 준하는 비상 상황”이라며 에너지 사용량 10% 감축을 목표로 대대적인 캠페인에 나서기로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유가 급등으로 에너지 공급이 꽉 막힌 요즘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전시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다. 전기를 아끼기 위해 에펠탑 점등 시간을 줄인 프랑스에서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셔츠 대신 터틀넥 스웨터를 입고 대중 앞에 나타났다. 올겨울 에너지 대란에 대비하려면 국민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준 것이다.

지금 세계 각국에 에너지 절약이 중요하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특히 6개월째 무역적자와 고물가, 고환율 악재가 겹쳐 있는 우리는 더욱 절실하다. 원자재 가격 급등과 환율 상승으로 수입 비용은 훨씬 늘었는데 가계나 기업의 에너지 소비량은 그다지 변한 게 없다. 공공기관이 아무리 앞장서서 노력해도 민간 부문이 움직이지 않으니 만성 적자 구조는 더욱 고착화되고 있다. 마냥 에너지를 아끼자는 구호를 외치고 야간 골프의 자제를 읍소하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에너지 위기를 키운 것은 역설적이게도 정부의 에너지 대책이었다. 대표적인 게 전기료 인상 억제와 유류세 인하다. 에너지 수입 가격이 오르며 전기 생산·구매 비용도 폭증했지만 지지율 관리에 급급했던 역대 정권은 전기료를 낮은 수준에 계속 묶어뒀다. 국제유가가 치솟으면서 기름값이 오를 기미를 보이자 이번엔 휘발유에 붙는 세금을 줄여 가격 상승을 막았다. 에너지 값이 오르면 그에 맞춰 소비를 줄이는 노력으로 극복해야 정상인데, 정부는 국민 부담을 줄여주겠다며 오히려 무리한 가격 통제를 남발했다. 이는 올해 한전의 30조 원 적자와 정부의 세수 감소라는 부작용을 낳았고 국민들의 위기의식만 둔감하게 만들었다.

지금 같은 고물가 고환율 고유가 시대에 에너지 과소비는 불에 기름을 안고 뛰어드는 꼴이다. 또 막대한 무역적자를 키우고 미래 세대에게 짐을 떠넘기는 행위이기도 하다. 에너지 위기에 직면한 유럽 국가들은 대국민 절약 캠페인에 그치지 않고 전기료와 난방비 인상도 병행해 자연스러운 수요 감축을 유도하고 있다. 달콤한 포퓰리즘 정책을 내세우는 대신 고통을 감내하며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가자고 국민들을 설득할 용기 있는 지도자가 우리에겐 있을까. 노동개혁, 연금개혁 못지않게 시급한 개혁이 여기 또 있다.


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