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여자에게 말했다. “당신, 나에 대해 쓰진 않겠지.” 자신의 연인이 사적인 경험을 글로 쓰는 작가이기에 노파심에서 한 말이다. 202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아니 에르노가 바로 그 작가다.
그런 말을 들었음에도 에르노는 그 남자와의 일을 ‘단순한 열정’이라는 책에 담아 펴냈다. 책 속의 남자는 그보다 십여 년 아래의 유부남인 러시아 외교관으로 허구적 인물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작가는 그 남자를 사랑하면서 했던 생각과 행동을 가감 없이 털어놓는다. 낯 뜨거운 묘사도 서슴지 않는다. 그것은 사랑으로 인한 고뇌와 상처, 이별을 치유하는 방식일지 모른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애도라고나 할까.
문제는 그 애도가 너무 자기중심적이라는 데 있다. 쓰지 말라고 했다는 상대방의 말까지 인용하면서 쓰는 행위는 뭘까. 물론 작가는 그것이 그 사람에 관한 책이 아니라고 말한다. “단지 그 사람의 존재 자체로 인해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사람과의 은밀한 얘기를 드러낸 것만으로도 이미 그것은 그 사람에 “관한” 책이 되었다. 그 사람은 이용되고 그것은 다시 책이라는 상품이 되어 유통되고 소비되었다. 그 사람이 읽으라고 쓴 글도 아니고, 그 사람이 읽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신의와 윤리를 저버렸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