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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부모를 상습적으로 협박할 때[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입력 | 2022-10-19 03:00:00

〈165〉 처한 상황과 스트레스 들여다보기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협박(?)을 하는 아이들이 있다. 누군가를 다치게 하겠다고 하거나 죽어버리겠다고 하거나 집을 나가버리겠다고 하거나 물건을 부숴버리겠다고 하는 등의 협박을 서슴없이 하는 아이들이 있다.

이 아이들은 왜 그럴까? 첫 번째로 아이가 협박을 하는 횟수가 어쩌다 한 번 수준이라면, 이유는 크고 과장되게 말하기 위해서일 수 있다. 특히 사춘기가 되면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싶어 한다. 그 한 방법으로 상대방에게 겁을 주고, 거칠고 강하게 말하기도 한다. 강해 보이고 싶고,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힘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이때 부모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꺾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아이를 더 강하게 대하면, 아이는 심리적으로 굴욕감을 느끼면서 부모보다 더 세게 나가야겠다고 생각한다. 다음에는 좀 더 위협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이런 악순환이 지속되다 보면 부모와 아이 사이가 아주 나빠지게 되고, 아이는 이런 부모와의 관계 경험을 토대로 이후에 맞닥뜨리는 권위적인 대상과의 관계에서 더 위협적인 행동을 일삼을 수 있다.

아이가 자라면서 표현하는 공격성이나 힘의 과시는 어느 정도 인정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인정해준다는 것은 그런 행동을 방치하라는 것이 아니다. ‘존중’해주라는 것이다. 아이가 “다 때려 부숴버릴 거야”라고 협박할 때 부모는 “네가 그만큼 힘이 생겼다는 것은 그만큼 자랐다는 말이지? 그런데 자란다는 것은 힘이 세지는 것만 아니라 생각도 자라는 거야. 힘은 충분히 세진 것 같으니까 이제부터 생각을 키우는 과정이 필요하겠구나. 어쨌든 네가 화가 났다는 것을 엄마 아빠가 알겠다”라고 말해주는 정도로 대처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아이가 협박하는 수준이 심하지 않고 조금 습관적인 것 같을 때는, 부모의 관심을 얻고자 하는 행동일 수 있다. 아이에게 부모의 관심은 식물에게 물이나 햇빛과도 같다. 어떤 이유에서건 부모가 아이에게 적절히 반응해주지 않거나 일관되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아이는 부모의 관심을 얻기 위해 오히려 문제 행동을 일으킬 수 있다. 문제 행동 중에서도 위협이나 협박은 강도가 세기 때문에 부모의 즉각적인 반응을 유도한다. 바꿔 말하면, 꼭 이런 행동까지 해야지만 부모가 반응을 해준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라면 부모가 평소 아이에게 주는 사랑과 관심이 아이도 그렇게 느끼도록 전달되고 있는지를 되짚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세 번째로 생각해볼 수 있는 이유는 전에 받았던 마음의 상처나 거절, 공격에 대한 반응일 수 있다. 이때 아이의 마음은 억울하고, 분노가 들끓고, 화가 치밀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는 등 아이로서는 처리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들이 섞여있는 상태이다. 더욱이 이런 것들이 오랜 기간 반복되어왔다면 아이는 마음속에만 담아두기 어려워 어떤 식으로든 표출하려고 한다.

이런 경우 부모나 가까운 어른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학교 상담교사나 지역사회의 청소년센터 등에서 지속적인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 이를 통해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준 요인들을 없애주어야 하며, 그 원인이 가족이라면 가족도 치료를 받아야 한다.

아이의 협박이 어쩌다 한 번 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지속될 때에는 ‘아이들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부모나 교사, 이를 알게 된 어른들이 즉시 아이와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아이가 대화를 거부하거나 너무 논쟁적이거나 너무 방어적으로 경계하거나 끊임없이 폭력적인 위험한 계획들을 이야기한다면, 반드시 아이를 전문의에게 보내 정신건강 상태를 점검하고, 다른 심리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러한 협박이나 위협은 조울증이나 우울증 같은 치료가 필요한 질병 상태이거나 충동조절장애일 수도 있으므로 이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받고 치료 계획을 의논해야 한다.

또 협박이나 위협이 심각하다고 느껴지면 반드시 아이가 이전에 어떻게 지내왔는지, 어떤 행동을 했었는지 잘 알아보고, 아이의 기본적인 성격이나 최근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는지 등도 살펴봐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이의 행동이 아주 위급한 상황일 수 있다. 혹여 그런데도 아이 자신이나 가족들이 치료를 거절한다면, 그냥 내버려두지 말고 경찰관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가까이에 있는 병원을 방문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