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가타부치 스나오 ‘마이 마이 신코 이야기’
이정향 영화감독
1955년, 일본 야마구치현의 시골에 사는 초등학생 말괄량이 신코. 지루할 정도로 보리밭만 펼쳐진 농촌이지만 풍부한 상상력의 신코는 자연을 벗 삼아 심심할 틈이 없다. 할아버지가 집 앞의 수로를 보며 말씀하셨다. “강은 본래 직각으로 굽어지지 않는 법. 아마도 천 년 전에는 여기가 중심지였고, 큰 집이 있었기에 수로를 만드느라 강줄기를 꺾었을 거다.” 신코는 천 년 전에 살았을 사람들을 떠올리며 상상의 나래를 편다. 천 년 전, 이 마을을 다스리던 이에게 실제로 신코 또래의 딸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그 소녀와 소통하고자 천 년을 넘나드는 마음의 편지를 쓴다.
천 년 전, 이곳의 공주는 평민의 친구를 사귀면 안 되기에 언제나 외톨이였다. 아무라도 자기를 찾아오길 기다리다가 지쳐, 천 년 후의 사람들에게 자기를 잊지 말라며 마음의 편지를 보낸다. 기적처럼 그 마음이 천 년 후의 신코에게 가닿고, 둘의 마음이 서로를 보듬고 위로한다. 신코는 자기보다 먼저 살았던 사람들의 정성과 사랑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음을 깨닫고, 오늘을 아낌없이 누리면서 내일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이런 신코를 보니 얼마 전 다녀온 서울 종로의 유금와당박물관이 떠올랐다.
유창종 관장은 전직 검사다. 30대에 와당(처마 끝부분을 마감하는 기와)에 반해 40년간 사재를 털어가며 와당 수집에 몰두했다. 증거들을 모아 추론해 가며 사건의 퍼즐을 짜 맞춰 가는 검사의 일처럼 와당의 조각 하나를 두고서 그 시대상을 유추해 보는 작업은, 그에게 만난 적 없는 과거의 사람들과 교감하는 쾌감을 주며 주어진 삶을 의미 있게 살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인생의 길잡이가 되었다고 한다.
‘마이 마이 신코 이야기’는 만화영화이지만 감독은 50여 년 전의 마을을 구현하고자 토박이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자문을 하고, 발품을 팔며 수십 년 전 사진과 물건을 구했다. 만화이기에 넘어갈 수도 있는 오차 범위를 거부하고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의 삶을 진지하게 대했다. 저예산에 소소한 일상을 다룬 영화라 흥행엔 실패했지만 꾸준한 입소문에 힘입어 재개봉까지 한 저력이 있다.
이정향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