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우화’ 그린 폴란드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화상인터뷰
왼쪽과 오른쪽 페이지에 사내가 각각 한 명씩 있다.
살짝 벗겨진 머리,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셔츠, 바지 아래로 드러난 맨발…. 두 사내의 생김새는 쌍둥이처럼 유사하다. 양손으로 기다란 막대기를 들고 있는 포즈마저 똑같다.
그런데 왼쪽 사내가 든 막대기는 끝이 뭉뚝한 삽이다. 왼쪽 사내는 삽 위에 빵을 올린 뒤 오븐에 넣고 있다. 반면 오른쪽 사내가 든 막대기의 끝은 뾰족하고 빨갛다. 누군가를 찌른 직후 붉게 물든 창(槍)이다.
“유럽 사람들에게 빵을 굽는 일은 사람을 먹여 살리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같은 포즈를 한 사내의 손에 창이 들려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인간이 손에 무엇을 쥐고 있느냐에 따라 그림이 전혀 달라지죠.”
이보나는 세계 3대 아동문학상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탈리아 볼로냐 라가치상을 3차례 수상한 국제적인 그림책 작가다. 올 3월 한국인 최초로 이수지 작가가 수상해 널리 알려진 ‘어린이책의 노벨 문학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최종 후보에도 3차례 올랐다.
그가 신작을 집필한 건 유럽에 닥친 혼란 때문이다. 지난해 말 그가 책을 그릴 땐 중동 난민을 둘러싼 벨라루스와 폴란드의 갈등이 러시아와 유럽연합(EU)의 힘겨루기로 번지고 있었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집필에 영향을 끼쳤다.
“제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을 전달하고 싶지 않았어요. 설명하지 않을 때 독자들은 그림에서 다른 것을 찾아내죠. 제 목소리는 작아서 폭력과 전쟁을 멈출 수 없어요. 다만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세상을 바꿀 수 있죠.”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