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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적’ 미국-중국이 ‘친구’ 됐다가 다시 ‘적’이 된 사연[정미경의 이런영어 저런미국]

입력 | 2022-10-29 12:00:00


미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십니까. 영어를 잘 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정미경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으로 모이십시오. 여러분의 관심사인 시사 뉴스와 영어 공부를 다양한 코너를 통해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공간입니다. 아래 링크로 구독 신청을 해주시면 기사보다 한 주 빠른 월요일 아침 7시에 뉴스레터를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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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83995“Let China sleep, for when she wakes, she will shake the world.”
(중국을 계속 자도록 놔둬라. 중국이 깨어나는 순간 세상을 흔들어놓을 것이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최근 국가안보전략(NSS)을 공개하는 브리핑에서 중국을 “유일한 경쟁자”라고 규정했다. 백악관 홈페이지

18, 19세기를 살다 간 유럽의 정복왕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중국에 대해 한 말입니다. 중국에 대한 서구세계의 경계심을 상징하는 발언입니다.

최근 공개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NSS)도 중국 일색입니다. 총 68쪽에 달하는 보고서는 중국을 “the only competitor with both the intent to reshape the international order and, increasingly, the economic, diplomatic, military and technological power to do it”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세계질서를 재편하려는 의도와 이를 실현하려는 경제 외교 군사적 기술적 영향력을 동시에 갖춘 유일한 경쟁자”라고 합니다. 점잖은 단어들로 포장됐지만 보고서 곳곳에는 절박한 위기의식이 담겨 있습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1시간 넘게 NSS 내용을 설명하는 브리핑을 연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브리핑이 끝난 뒤 워싱턴 조지타운대로 가서 전문가들을 상대로 설명회를 다시 한번 열었습니다.

설리번 보좌관은 “we are not seeking competition to tip over into confrontation or a new cold war”라고 했습니다. “중국과의 경쟁이 대결 또는 새로운 냉전 구도로 넘어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말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대결 구도로 넘어갔고, 신냉전 시대도 이미 도래했기 때문입니다. 첨단기술, 군사.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미·중 관계의 역사적 사건들을 알아봤습니다.

“The only time I’d meet with him would be if our cars accidentally collided.”
(내가 그와 유일하게 만나는 때는 우리 차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때일 것이다)

1954년 저우언라이 중국 외교부 부장이 스위스 제네바회담에 참석했을 때 모습. 그는 회담에서 존 포스터 덜레스 국무장관에서 악수를 청했다가 거절당한 일화가 있다. 위키피디아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미·중 간의 접촉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냉랭한 양국 관계는 1954년 스위스 제네바회담에서 극적으로 드러났습니다. 한반도 문제 등이 논의됐던 제네바회담에 미국에서는 ‘냉전의 설계자’로 불리는 존 포스터 덜레스 국무장관이 참석했습니다. 중국에서는 ‘최고의 외교관’으로 통하는 저우언라이 공산당 외교부 부장이 참석했습니다.

이들은 회의장에서 마주쳤습니다. 저우언라이가 먼저 악수를 청했습니다. 덜레스 장관은 저우언라이가 내민 손을 외면하고 자리를 떴습니다. ‘외교 결례’라는 지적이 일었지만, 덜레스 장관은 “내 행동에 후회하지 않는다”라고 밝혔습니다. “내가 그와 만나는 일은 우연히 우리 차가 충돌했을 때뿐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교통사고처럼 피치 못할 상황이 아니면 서로 만날 일이 없는 사이라는 것입니다. 냉전 시대 중국에 대한 미국의 반감을 상징하는 발언입니다.

악수를 거절당한 저우언라이는 노련한 외교관답게 어깨를 으쓱하고 넘어갔습니다. 대신 그는 미국의 조지프 매카시 열풍 때문에 공산주의자로 낙인이 찍혀 스위스로 쫓겨 와있던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을 수소문해서 함께 식사했습니다. ‘속 좁은’ 미국 외교 수장의 악수 거절에 대한 복수였습니다.

“The ping heard round the world.”
(탁구 소리가 전 세계로 퍼지다)

197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미국 선수 글렌 코원이 중국 선수에게서 선물 받은 수건. 위키피디아

관계 개선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은 탁수 선수들이었습니다. 1971년 4월 일본 나고야에서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열렸습니다. 연습장으로 가는 버스를 놓친 미국 선수 글렌 코원은 우연히 중국 선수단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좡쩌둥이라는 중국 선수는 코완에게 중국의 명산인 황산이 그려진 실크 수건을 선물했습니다.

중국 선수들에 섞여 코원이 버스에서 내리자 기자들의 눈에 띄었습니다.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코원은 “중국 같은 나라에 가보고 싶다”라고 답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마오쩌둥 중국국가주석은 미국 선수단을 초청했습니다. 선수단 15명은 1949년 이후 중국 정부의 공식 초청으로 입국한 첫 미국인들이 됐습니다. 이들은 귀국 후 “they are just like us”(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더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당시  선수단과 동행했던 시사잡지 타임은 “the ping heard round the world“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ping’과  ‘heard’ 사이에 ‘was’가 생략된 것으로 “핑(탁구) 소리가 전 세계에 들리다”라는 뜻입니다. 작은 행동이 큰 결과를 낳을 때 긍정적 의미로 쓰는 말입니다.  

“We need to urge China to become a responsible stakeholder in the international system.”
(우리는 중국이 국제 체제에서 책임 있는 이해관계자가 되도록 촉구할 필요가 있다)

2005년 로버트 졸릭 국무부 부장관은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역할을 ‘책임 있는 이해관계자’(responsible stakeholder)로 규정하는 연설을 했다. 미 국무부 홈페이지

개혁 개방 노선을 선택한 중국은 경제적으로 급성장했습니다. 2000년대 초부터 미국에서는 중국 견제론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2005년 9월 로버트 졸릭 국무부 부장관은 뉴욕에서 열린 미·중 관계 전국위원회(NCUSCR) 만찬에서 중국이 국제사회에 편입된 만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내용의 연설을 했습니다. 여기서 나온 ‘responsible stakeholder’(책임 있는 이해관계자)라는 단어는 지금까지도 중국의 역할을 가장 적절하게 규정한 단어로 꼽힙니다.

졸릭 부장관은 연설에서 다채로운 표현들을 사용했습니다. 중국을 용(龍) 중에서도 가장 위협적인 ‘fire breather’(입에서 불을 내뿜는 용)에 비유했습니다. 중국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을 얘기할 때는 ‘cauldron(컬드런) of anxiety’(불안감으로 끓는 가마솥)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가장 눈길을 끈 단어는 ‘responsible stakeholder’로 졸릭 부장관이 3차례나 사용했습니다. ‘responsible’을 뺀 ‘stakeholder’는 더 자주 등장했습니다. 원래 ‘stakeholder’는 도박 용어로 ‘판돈을 거는 사람’을 말합니다. 광업 용어로 채굴 지점에 막대기(stake)를 꽂아놓는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요즘은 종업원, 주주, 투자자, 채권자 등 기업 운영에 이해관계를 가진 참여자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졸릭 부장관이 강조한 단어는 중국에서도 주목받았습니다. 그런데 번역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responsible stakeholder,’ 특히 ‘stakeholder’는 중국인들이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낯선 단어였기 때문입니다. 중국 지도부는 ‘책임지는 대국’이라는 의미의 ‘부책임대국’(負責任大國)으로 결론을 냈습니다. 영어로는 ‘responsible great power’의 뜻입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stakeholder’가 완전히 다른 의미의 
‘great power’로 바뀐 것에 대해 의문이 제기됐습니다. “China’s leadership appropriated the responsible stakeholder framework to suit their foreign policy goals.” 한 미국 언론은 이렇게 꼬집었습니다. 중국 지도부가 ‘대국’이라는 외교 목표에 맞추기 위해 마음대로 단어를 전용(appropriate)했다는 것입니다.
명언의 품격

1972년 중국을 방문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오른쪽)이 마오쩌둥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뛰어난 대통령’은 아니었지만 ‘뛰어난 전략가’라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베트남전과 반전시위 등으로 고전하던 그는 난관을 뚫고 나갈 ‘한 방’이 필요했습니다. 1971년 핑퐁 외교가 성사되자 그는 중국 방문을 생각해냈습니다. 이듬해 그는 중국을 방문한 첫 미국 대통령이 됐습니다.

닉슨 대통령이 극비리에 헨리 키신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중국에 보내 방문 일정을 조율한 것은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습니다. 키신저 보좌관은 아시아 순방 중 파키스탄에서 배탈이 났다고 해놓고 한밤중에 파키스탄 외교관이 모는 폭스바겐 비틀을 타고 공항으로 갔습니다. 대기하고 있던 중국행 비행기 오르자 목적지를 모르던 키신저 경호원들은 위협을 느껴 총까지 꺼내 들 정도였습니다. 무사히 중국에 도착한 키신저 보좌관은 저우언라이 공산당 총리를 만나 초청 수락을 받은 뒤 성사됐다는 표시로 닉슨 대통령에게 “eureka”(유레카)라는 한 마디가 적힌 암호를 보냈습니다. ‘환희’라는 뜻입니다.

“Nixon goes to China.”(닉슨, 중국에 가다)

키신저 보좌관으로부터 연락받은 닉슨 대통령은 곧바로 대국민 연설을 통해 중국 방문 계획을 밝혔습니다. 충격은 엄청났습니다. ‘열렬한 반공주의자’라는 평판이 자자한 대통령이 중국에 가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닉슨 대통령은 권력을 잡기 전부터 “미국 지도자가 중국을 방문한다면 재난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공언해왔습니다. 충격이 가시자 여론은 지지 쪽으로 모아졌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 개선을 통해 긴장 완화가 이뤄진다면 모든 나라에 득이 될 것이다”라는 닉슨 대통령의 연설은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언론은 ‘Nixon goes to China’라는 헤드라인으로 도배를 했습니다. 이 구절은 ‘정치인의 결단’ ‘과거와의 결별’을 의미하는 명언이 됐습니다. 리더는 눈앞의 이해관계나 지지 기반에 연연하지 않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지켜온 신념이나 발언을 뒤엎는 것이라도 국익을 위한 것이라면 어쩔 수 없습니다. 이를 ‘Nixon-to-China moment’(닉슨의 중국 방문 순간)라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노선’을 갈아타는 정치인에게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기보다 오히려 “유연한 사고”라고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이런 분위기가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입니다.
실전 보케 360

제러미 헌트 영국 신임 재무장관은 취임하자마자 시장의 불안을 몰고 왔던 감세안 철회를 약속했다. BBC

실생활에서 많이 쓴 쉬운 단어를 활용해 영어를 익히는 코너입니다. 최근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쿼지 콰탱 재무장관을 취임 37일 만에 경질했습니다. 제러미 헌트 전 외무장관이 신임 재무장관으로 임명됐습니다. 헌트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콰탱 전 장관과 트러스 총리가 추진했던 감세안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We have to show the world we have a plan that adds up financially.”
(우리는 재정적으로 말이 되는 계획을 세상에 보여줘야 한다)

헌트 장관의 발언 중에 ‘add up’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직역하면 ‘더하다’라는 뜻이지만 ‘이치에 맞다’ ‘앞뒤가 맞다’라는 의미로 더 많이 쓰입니다. ‘make sense’(말이 되다)와 같은 의미입니다. 말들이 차곡차곡 더해지면(add up) 이치에 맞게 된다는 데서 유래했습니다. 헌트 장관은 재원 마련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콰탱 전 장관처럼 감세를 추진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의미에서 한 발언입니다. 미국 영화를 보면 형사가 범인을 취조할 때 “your story doesn’t add up”이라며 화를 내는 장면이 종종 나옵니다. “당신 진술 내용은 앞뒤가 안 맞는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국가주석의 첫 정상회담에 관한 내용입니다. 지난해 11월 열렸던 첫 회담에서 두 정상은 치열한 탐색전을 벌였습니다.

시진핑 중국국가주석(오른쪽)이 2015년 미국을 방문했을 때 조 바이든 당시 부통령과 건배하는 모습. 백악관 홈페이지

▶2021년 11월 22일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11122/110387463/1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국가주석이 첫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팬데믹 때문에 화상 회담으로 열렸지만, 양측은 서로 할 말은 똑 부러지게 하면서 설전을 벌였습니다. 

“If past is prologue, I am sure that today we’ll be discussing those areas where we have concerns.”
(과거 사례에 비춰봤을 때, 우리는 우려되는 현안들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만약 과거가 서막이라면 우리는 오늘 우려되는 분야들을 논의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If past is prologue”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 ‘템페스트’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 “What’s past is prologue”(과거가 서막이다)에서 유래했습니다. ‘과거 사례에 비춰봤을 때’라는 뜻입니다. 과거 양국 정상이 만났을 때마다 우려했던(부딪쳤던) 현안들이 이번 회담에서도 다뤄질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미국은 조목조목 짚을 준비가 돼 있다는 기선 제압용 발언입니다. 

“Let’s get something straight, we’re not old friends.”
(확실히 짚고 넘어가자. 시 주석과 나는 오랜 친구가 아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6월 한창 대중(對中) 강경 모드를 밀고 나갈 때 기자회견에서 “확실히 짚고 넘어가자. 시 주석과 나는 오랜 친구가 아니다”라고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시 주석은 이번 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오랜 친구’라고 부르며 친한 척을 했습니다. 양국 정상의 치열한 신경전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Let’s get something straight”는 다음에 나올 말을 강조하고 싶을 때 씁니다. 비슷한 어감의 “Let me get this straight”와 헷갈리기 쉽습니다. 후자는 “방금 네가 한 말을 정리해보자면”이라는 뜻입니다. 

“We were not expecting a breakthrough. There were none to report.”
(애초 돌파구를 기대하지도 않았다. 보고사항 없다)

회담 후 백악관 고위당국자는 언론 브리핑에서 대만 문제에 대해 “보고할 것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애초 돌파구를 기대하지도 않았다”라고 합니다. 대만 문제에서 중국을 강하게 자극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 “None(또는 Nothing) To Report”는 군대에서 많이 쓰는 말입니다. “보고사항 무(無)”를 의미합니다. 줄여서 “NTR”라고 합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