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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당 150엔 돌파 눈앞…‘32년 만 최저’ 엔화 하락폭 큰 이유는

입력 | 2022-10-19 17:07:00

뉴스1


달러 대비 일본 엔화 가치가 32년 만 최저로 떨어지며 150엔 돌파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우려가 나오자 일본 금융당국 수장들이 환율 방어를 위한 적극적인 구두(口頭) 개입에 나섰다. 3월만 해도 엔저에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던 중앙은행 수장이 19일 엔화 가치 하락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입장을 바꿨고 정부는 1개월여 만에 또다시 환율 개입에 나설 뜻을 밝혔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는 세계 최대 수준의 국가 채무, 약해진 제조업 경쟁력 등 때문에 엔화 가치 하락을 막기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선진국으로서 수십 년간 해외에 쌓아놓은 자산 덕에 당장 경제 위기에 빠질 가능성은 낮지만, 경제 체력 저하에 따른 구조적 불황을 당분간 타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 日 금융당국, 환율 재개입 태세
19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엔 환율은 149.4엔대를 넘으며 1990년 이후 최고 수준까지 올랐다. 환율 상승은 해당국 통화 가치 하락을 의미한다. 엔화 가치는 지난해 연말 대비 20.5% 하락하며 주요 7개국(G7)은 물론 한국, 중국 등과 비교해도 가치 하락률이 컸다.

150엔 돌파가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일본 금융당국 움직임은 바빠졌다.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중앙은행) 총재는 이날 국회에 출석해 현재의 엔저 현상에 대해 “급속하고 일방적이라 경제에 마이너스(―)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구로다 총재는 “안정적 엔저라면 경제에 좋은 영향을 미치겠지만 영향력은 업종, 기업 규모, 경제 주체에 따라 다르다”고도 설명했다. 구로다 총재가 3월 “엔저는 일본 경제에 플러스로 작용한다”고 언급한 것과는 정반대 입장이다.

스즈키 ㅤ슌이치(鈴木俊一) 일본 재무상은 이날 “세밀하게 빈도를 높여 상시적으로 환율 움직임을 체크하고 있다”며 “이제까지의 생각대로 확실히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일본 외환시장 관계자는 “엔화 움직임의 과도한 변동에 개입을 불사하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시장 일각에서는 일본 금융당국이 비공개적으로 엔화를 사들이고 달러를 내다 파는 개입에 나섰을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있다.


● 저금리-구조적 경쟁력 약화에 악순환
전문가들은 한국 등 다른 주요국들 통화에 비해 엔화 하락폭이 유독 큰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엔화 가치 하락의 단기적 최대 요인은 미국과 기준금리 격차 확대에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 상단을 연 3.25%까지 끌어 올렸음에도 일본은 단기금리 ―0.1%, 장기금리 0%의 ‘제로금리’를 고수하고 있다. 미국에서 물가상승률이 예상을 웃돌며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에 또다시 나설 것이 유력함에도 일본만은 세계에서 나홀로 금융완화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더 큰 이유는 일본 경제의 구조적 침체다. 과거에는 환율이 오르면 수출 가격이 낮아져 무역수지 흑자에 도움이 됐지만 지금의 일본은 상황이 다르다. 제조업 공장들이 잇따라 해외로 빠져 나가고 가전, 반도체 등의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환율 상승은 되레 천연가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물가를 자극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엔저→수출 증가 미미→원자재 수입가 상승→달러화 수요 증가→환율 상승’라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진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거품경제기 이후 최저 수준인 엔화 가치는 일본 경제의 구조적 약점을 상징한다”며 “에너지 수입 의존, 생산 거점 해외 이전 등으로 무역수지 적자가 구조화돼 실수요자들의 엔화 매도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금리를 올리기도 쉽지 않다. 30여 년간 지속된 불황 속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밀어붙인 ‘아베노믹스’ 경기 부양책의 영향으로 일본 국가부채는 올 6월 말 기준 1255조1932억 엔(1경1991조 원)까지 늘어났다. 일본의 국가채무비율은 256.9%로 세계 최고다. 금리를 0.1%포인트만 올려도 연간 이자부담이 1조2000엔 이상 늘어난다.

하야카와 히데오 도쿄재단 정책연구소 연구원은 아사히신문에 “금융 완화 장기화로 금리 리스크에 대한 감각이 마비돼 정치인들이 재정 규율을 무시하고 확장 재정을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