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를 영화로 읇다]〈46〉날갯짓하는 벌새처럼
영화 ‘벌새’에서 주인공 은희(오른쪽)는 한문학원 선생님인 영지에게서 위안을 얻는다. 학원에서 은희와 영지가 차를 마시고 있다. 엣나인필름 제공
김보라 감독의 ‘벌새’(2019년)에서 주인공인 열네 살 은희가 1990년대를 살아간 지극히 보편적인 소녀였다면, 1902년 열네 살이 된 오효원(1889∼?)은 차별받는 여성으로 태어나 시로 명성을 얻은 특별한 사람이었다.
위 시는 부친 오시선이 공금 횡령으로 한양의 감옥에 갇히자 상경해 아버지를 구하려 백방으로 노력하던 와중에 쓴 것이다. 시인은 후일 시집 서문에서 집안의 재앙을 만나 모진 풍상을 겪으며 시와 글씨로 겨우 생계를 해결했다고 적었다.(‘自敘’) 시인의 효심에 감동한 당시 유력 인사들은 그를 자신들의 시회(詩會)에 끼워주고, 시인과 부녀(父女) 혹은 사제(師弟) 관계를 맺으며 도움을 줬다. 당시 궁내대신 김종한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영화에서 벌새는 가냘파 보이지만 누구보다 바지런한 날갯짓으로 세상을 헤쳐 나가는 존재의 상징이다. 영화는 벌새가 상징하는 희망, 회복, 사랑으로 마무리된다. 시인도 자신을 날갯짓을 배우는 새(까마귀)로 비유했다.
영화 마지막에 영지가 죽기 전 은희에게 전한 말이 나온다. “삶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성수대교가 붕괴된 후에도 세상은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시인과 또 다른 ‘은희들’은 여전히 벌새처럼 여린 날개를 바삐 움직이며 불합리한 세상을 견디어 나갈 것이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