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진행한 대규모 공군 훈련을 참관 중인 김정은. 김정은과 뒤에 있는 비행 지휘관들의 얼굴 표정이 매우 어둡다. 사진 출처 조선중앙통신
주성하 기자
“전투기 150여 대를 동시 출격시킨 대규모 항공 공격 종합훈련이 8일 진행됐다”고 북한이 공개했을 때 지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북한에 날 수 있는 전투기가 150대가 된다고? 아무리 빡빡 긁어모아도 어려울 건데…. 만약 진짜로 150대나 떴다면 그중 몇 대가 추락했을지 그게 제일 궁금해.”
이후 북한이 발표한 150여 대는 크게 과장된 것이고, 훈련에 참가한 비행기도 추락하거나 비상착륙했다는 여러 보도가 정보 소식통을 인용해 나왔다. 게다가 “북한이 사진에 같은 전투기를 복사해 여러 번 붙여 넣은 것 같다”는 독일 훔볼트엘스비어연구소 사진 분석 전문가 토르스텐 베크 박사의 분석도 나왔다. 워낙 예전에도 군사훈련 때마다 이런 사진 조작이 많았기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검은 연기를 풀풀 날리는 고물 비행기들이 제2차 세계대전 때의 공습처럼 섬 상공을 저공비행하며 폭탄을 투하하고 있었다. 북한이 보유한 전투기가 중거리 공대지 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데, 그걸 찍은 사진은 없었다.
북한 매체는 김정은이 훈련 직후 “건군사에 전례 없는 대규모의 항공 공격 종합훈련에서 무비의 용감성과 불굴의 전투 정신을 발휘하며 인민 공군의 위용을 만방에 떨친” 비행사들과 만나 축하 격려를 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고작 출격 한 번 했을 뿐인데, 무비의 용감성과 불굴의 전투 정신을 운운한 것도 어처구니가 없는데, 고물 전투기들을 놓고 인민 공군의 위용을 만방에 떨쳤다니 할 말을 잃게 된다.
북한군 비행사들은 자신들이 하루살이보다 못한 운명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을지 모르겠다. 그들을 만나면 해줄 말이 참 많지만, 하나만 고르면 1982년 6월의 ‘비까 계곡 공중전’을 설명해 주고 싶다.
역사상 가장 일방적인 공중전으로 알려진 이 공중전에선 이스라엘의 F-15, F-16 전투기와 시리아의 미그-23, 미그-25 전투기들이 격돌해 85 대 0 이라는 스코어를 냈다. 시리아 공군의 최신예 미그기 85대가 격추될 동안 이스라엘 전투기는 단 한 대의 피해도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더 암담해진다. 추가로 전투기를 사올 돈도 없지만, 설사 돈이 있어도 사기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세계 2위 군사력이라고 알려진 러시아는 북한보다 훨씬 더 좋은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에서 제공권 장악에 실패했다. 이미 항공기 수백 대를 잃은 러시아가 앞으로 상당 기간 북한에 항공기를 팔 여유는 없을 것이다.
김정은은 정말 고물 전투기들을 많이 띄우면 상대가 겁을 먹을 거라 믿은 것일까. 공군에 대한 상식이 조금만 있는 사람이라면 코웃음만 칠 일이다.
외부와 단절돼 무지 속에 사는 북한 주민에게 힘을 주기 위한 내부용이라면, 진심으로 바라건대 앞으로 이런 훈련 자주 하길 바란다. 전시용 창고에 고이 보관한 항공유가 바닥이 나고 비행사들은 기량을 쌓기 전에 추락해 사라질 것이다. 대규모 훈련을 몇 번만 더 하면 그나마 남아있는 북한 공군 전력의 몇십 %는 줄지 않을까 싶다.
이런 훈련은 한미 연합군에도 더없이 고마운 훈련이다. 북한 비행사들이 백날 훈련을 해봐야 그런 고물 비행기는 별 위협이 되지 못한다. 반면 유사시 북한 항공기가 뜨면 우리는 싫든 좋든 수억∼수십억 원짜리 미사일을 쏴야 한다. 그러니 날 수 있는 것은 적을수록 좋다. 김정은이 보충하기도 어려운 항공기를 셀프로 소모만 시키면 진심으로 박수를 쳐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