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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돈줄 마르는 기업… ‘흑자부도’ 막을 유동성 지원 서둘라

입력 | 2022-10-21 00:00:00


금리가 급등하면서 기업들의 주요 자금 조달 통로인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투자자가 줄어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지자 우량기업들까지 은행 대출에 의존하고 있다. 증시를 통한 자금 조달도 중단돼 기업공개를 준비하던 벤처기업들은 줄줄이 계획을 철회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최근 발행한 기업어음 금리는 연 5.34%였다. 작년 4월 연 1.5%에 자금을 조달한 걸 고려하면 1년 반 만에 3배 이상 뛴 것이다. 그 사이 0.5%였던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3%로 높아졌고, 이달 초 강원도의 채무보증 철회로 춘천 레고랜드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에 부도가 발생하자 불안감이 커진 채권 투자자들이 지갑을 닫아버렸기 때문이다.

우량기업이 이런 정도면 신용도가 낮은 기업의 사정은 심각할 수밖에 없다. 이달 들어 19일까지 국내 회사채 발행액은 1월의 7분의 1 수준이었다. 아파트 분양시장이 마비된 영향까지 겹쳐 일부 중소 건설사, 부동산 PF대출을 많이 해준 증권사들의 부도설까지 나오고 있다. 벤처업계의 어려움도 커져 스타트업이 7, 8월 유치한 투자액은 작년보다 60∼70% 급감했다. 높은 예·적금 금리를 쫓아 은행에만 자금이 몰리는 ‘역(逆)머니무브’도 기업들이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다.

채권시장 붕괴 가능성까지 제기되자 금융당국은 채권시장안정펀드를 재가동해 회사채, 기업어음을 사들이기로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했던 것과 같은 조치다. 하지만 미국의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이 내년 초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근본적 해결책은 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자금시장 불안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경기침체 속 인플레이션 장기화로 원자재 가격 인상까지 계속되면 상황이 더 나빠져 장부상 이익을 내면서도 돈줄이 막혀 부도를 내는 기업들이 속출할 수 있다. 정부는 부실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을 서두르는 동시에 멀쩡한 기업들이 ‘흑자 부도’로 내몰리는 일이 없도록 종합적인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내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