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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 메디컬 리포트]증가하는 청년 우울증, 대책이 없나

입력 | 2022-10-21 03:00:00

최근 젊은층에서 우울증 환자 및 극단적 선택이 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두드러진 현상이다. 전문가들은 “위험군 발굴 대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게티이미지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20대 A 씨는 아르바이트 등으로 모은 돈으로 2019년 카페를 창업했다. 그러나 이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카페 매출이 급감했다. 반면 창업을 준비하며 받은 대출금과 임차료, 전기·수도요금 등 지출은 그대로였다. 그는 카페 유지를 위해 고금리 대출까지 받고 배달 아르바이트도 다시 시작했다.

3년 차 직장인 20대 B 씨(여). 코로나19 유행으로 본래 업무에 더해 자가 격리자 관리를 맡았다.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B 씨의 업무량도 크게 늘었다.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A 씨와 B 씨는 공통점이 있다. 코로나19 유행이 삶에 영향을 미쳐 심한 무기력감과 우울증이 닥쳤고 이어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 사망률 1위 국가라는 명예롭지 못한 타이틀을 수년째 유지하고 있다. OECD 보건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살률은 2019년 인구 10만 명당 24.6명으로, OECD 평균(11.0명)에 비해 무려 2.2배 높다.

특히 청년층이 우려할 수준이다. 극단적 선택의 주요 원인인 ‘우울증’ 증가 수치가 이를 방증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우울증과 불안장애 진료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 수는 코로나19 유행 직전인 2019년 81만1862명에서 지난해 93만3481명으로 2년 사이 15.0% 증가했다. 특히 20대 환자는 2019년 12만2039명에서 작년 17만7166명으로 45.2%나 급증했다.

보건복지부가 동기를 분석한 결과 우울증 등 정신적 어려움으로 인한 극단적 선택 시도 비율이 38.4%로, 경제생활 및 질병 문제를 넘어 가장 높았다. 특히 여성은 전 연령대에서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아 남성에 비해 불안 우울 등 정신 건강이 크게 악화됐다.

우울증이 심해지면 ‘의학적 도움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심한 우울증에 빠지면 치료가 쉽지 않다. 절망으로 인해 스스로 도움을 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움을 청할 희망을 상실해 포기하기도 쉽다. 복지부의 2021년 심리부검 면담 결과에 따르면, 극단적 선택 사망자 중 정신건강 문제로 치료 및 상담을 받은 경우는 절반 수준(59.2%)에 불과했다.

청년층의 극단적 선택 시도 경향은 △미혼일수록 △불안 강박 등 정신적 어려움을 겪을수록 △대인관계 갈등을 경험할수록 높아진다. 고위험군의 극단적 선택을 막기 위해서는 신체적 치료뿐만 아니라 정신과적 치료 등 다양한 의료진을 연결하는 집중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특히 극단적 선택과 관련된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중증 우울증 환자는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상태와 같다. 우울증 치료에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먹는 항우울제는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일반적으로 5∼7주가 소요된다. 증상 완화에 도달하기까지도 보통 한 달 이상 소요돼 치료 골든타임을 놓치기 쉽다.

전문가들은 누구라도 지속적으로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우울증을 경험하다 불과 몇 주 안에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는 데까지 이른다고 경고한다. 따라서 우울증 신호가 감지되었을 때 조기에 찾아 지역사회에서 치료와 연계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경희대병원 백종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민관이 협력하고 보건소 책임하에 조기 발견 치료와 지원 연계가 국가적으로 진행된 것처럼 극단적 선택 위기에 빠진 국민을 구조하는 데도 이러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치료제 지원도 절실하다. 2020년부터는 중중 우울증 환자들에게 효과가 좋은 치료제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그러나 환자 비용 부담이 커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 극단적 선택 문제는 개인과 가족의 문제로 돌리는 경향이 컸다. 하지만 현재 청년층의 우울증과 극단적 선택의 근본적인 원인은 개인이 아닌 사회적 문제인 것들이 많다. 한국의 자살 예방 계획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정책 효과가 나타날 수준의 실질적인 투입은 미흡해 보인다.

많은 전문가들은 코로나19 대응 시스템의 절반만이라도 지자체가 움직인다면 극단적 선택은 충분히 감소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보건당국은 위험군을 발굴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자살률을 절반 이상 줄인 핀란드, 일본 등의 사례를 잘 살펴보길 바란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