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눈에 선하게’ 펴낸 화면해설 작가 5인 인터뷰 2011년 화면해설방송 의무화때 함께 교육받고 10년 넘게 같은 길 “기생충-미나리 같은 좋은 작품들, 장애인들도 함께 즐길 수 있길…” “눈빛-몸짓이 중요한 장면땐 난감… 가장 적확한 표현 찾으려 밤새워”
19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화면해설 작가들이 자신들이 쓴 에세이집 ‘눈에 선하게’를 소개하고 있다. 작가들은 “내가 쓴 글이 장애인들에게 한 편의 멋진 그림으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김은주 권성아 이진희 임현아 홍미정 작가.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처음엔 제 동생에게 더 명확한 세상을 알려주고 싶어 시작했어요.”
그저 한 가지 작은 소망이었다. 동생과 함께 웃고, 함께 울고 싶었다.
임현아 작가(37)의 동생은 지금 서른이 넘었지만 정신 연령은 세 살이다. 뇌병변과 지적 장애로 온종일 TV 앞에 앉아 화면만 바라본다. 임 작가는 그런 동생에게 TV 속 세상을 조금이나마 들려주고 싶었다.
임 작가를 포함해 장애인을 위해 영상 설명 극본을 쓰는 ‘화면해설 작가’ 5명이 자신들의 일과 삶을 담은 에세이 ‘눈에 선하게’(사이드웨이)를 12일 펴냈다. 화면해설 작가란 시각장애 등으로 인해 영화나 드라마 등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영상을 설명하는 대본을 전문적으로 쓰는 이들이다.
2011년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미디어접근센터에서 화면해설 작가 양성교육을 받은 임 작가는 그간 영화 ‘체포왕’(2011년), KBS 다큐멘터리 ‘동행’ 등의 화면해설 대본을 써왔다. 함께 책을 펴낸 권성아(51) 김은주(46) 이진희(46) 홍미정 작가(51)는 함께 교육받은 입문 동기이자 10년 넘게 같은 길을 걸어온 동료들이다.
19일 서울 마포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이들은 “화면해설 작가란 초행길에 나선 친구에게 길을 설명하듯, 장면 속 모든 걸 꼼꼼하게 알려주는 사람들”이라며 “아직 국내에선 생소한 분야라 좀 더 많은 분에게 이 일의 필요성을 알려주려고 책을 썼다”고 말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작품은 모두 403편입니다. 그런데 화면해설이 포함된 작품은 10여 편뿐이에요. 3%도 안 되죠. 저희는 거창한 걸 바라는 게 아니에요. 그저 ‘기생충’ ‘미나리’ 같은 좋은 작품을 장애인들도 함께 즐길 수 있으면 좋겠어요.”(홍 작가)
화면을 설명하는 일도 말처럼 쉽지는 않다. 특히 눈빛이나 몸짓이 중요한 장면이 그렇다. 권 작가는 4월 종영한 tvN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너무 막막했다”고 떠올렸다. 주인공 나희도(김태리)와 백이진(남주혁)이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은 대사가 겨우 다섯 마디였다.
“수백 번 돌려본 끝에 이렇게 썼어요. ‘희도가 지나쳐 가는 이진의 팔을 잡는다. 이진의 눈길이 희도의 손에서 천천히 얼굴로 향한다. 희도는 이진의 눈을 피하지 않는다. 이진은 팔을 붙잡힌 채 희도의 말을 듣고 있다.’ 예상보다 더 만만치가 않죠? 하하.”
작가들은 인터뷰 도중 갑자기 휴대전화를 켜서 보여줬다. 각자의 메모장엔 온갖 표현과 단어가 빽빽했다. 이 작가는 “귀에 착 달라붙는 문장 하나를 찾으려 밤새 머리를 쥐어뜯을 때도 있다”며 웃었다.
“글을 쓰는 게 본업이지만, 실은 장애인에게 말을 건네는 일을 한다고 생각해요. 뻔한 표현보단 가장 적확한 표현을 찾아야, 아주 작은 감정의 떨림까지 들려줄 수 있으니까요. 작가란 독자에게 그런 걸 전달해주는 직업이 아닐까요.”(이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