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식민지의 식탁’ 근대 소설로 보는 식민시대 음식
책 ‘식민지의 식탁’ 표지
“설렁탕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현진건이 쓴 소설 ‘운수 좋은 날’(1924년)의 안타까운 결말은 오래도록 한국인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된 대목. 주인공 김 첨지는 퇴근길에 부인이 원하던 설렁탕을 사왔지만 부인은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그런데 부인은 왜 하필 ‘설렁탕’을 사달라고 한 걸까. 배탈이 난 환자가 먹기엔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텐데.
국문학 전공자로 성균관대 학부대학 대우교수인 저자는 신간 ‘식민지의 식탁’에서 근대소설 10편을 중심으로 일제강점기 유행했던 음식과 그를 둘러싼 문화를 다뤘다. 선정 작품은 염상섭의 ‘만세전(1924년)과 이상의 ‘날개’(1936년), 심훈의 ‘상록수’(1936년) 등 우리에게 친숙한 소설들이다. 저자는 “먹는다는 행위는 사회 문화적 취향과 연결되며 제도에 지배되기도 한다”며 “안타까운 것은 한국에서 그 시기가 식민지라는 역사와 맞물려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광수의 ‘무정’(1917년)에선 좀더 이채로운 음식이 등장한다. 주인공 영채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로 맘먹고 탄 평양행 기차에서 일본 도쿄 유학생인 병욱을 만난다. 병욱은 상처가 깊던 영채에게 위로를 건네며 어떤 음식을 건넨다. 영채는 “구멍이 숭숭한 떡 두 조각 사이에 엷은 날고기가 끼인 것”을 맛본 뒤 “특별한 맛은 없으면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운치 있는 맛이 있다”고 느낀다.
이 음식은 바로 샌드위치였다. 일본회사 ‘오후나켄’이 1898년부터 일본 기차역에서 팔며 ‘서구 음식’으로 큰 인기를 끌었고, 이후 조선에도 들어왔다고 한다. ‘무정’에는 또 다른 음식도 등장한다. 영채와 정혼한 형식은 하숙집에서 끓인 된장찌개를 “지극히 졸렬한 음식”이라고 비난한다. 일제강점기 지식인들이 한국 전통 문화와 서구 문명을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당시 경성에서 크게 유행했던 ‘카페’의 분위기도 맛볼 수 있다.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1934년)에는 구보 씨가 즐겨 찾은 ‘낙랑파라’라는 카페가 나온다. 당대 문인들은 카페에 모여 피로하고 우울한 대화를 나누곤 했다. 여기선 커피도 팔았다. 채만식은 1939년 잡지 ‘조광’에 기고한 글에서 커피를 “힝기레 밍기레한 게 맹물 쇰직한 맛”이라고 표현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